차고 흰 이슬이 맺힌다는 백로(白露)가 지나 추석 무렵이 되면 크고 둥글게 뜨는 보름달이 더욱 가을이 깊어짐을 느끼게 한다. 또한 가을을 대표하는 햇과일들과 황금들녘은 가을을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

한가위 보름달과 갖가지 가을 햇과일들뿐만 아니라 가을을 대표하는 물고기도 있는데 바로 미꾸라지이다. 미꾸라지(鰍魚)는 250여 종의 민물고기 중에서 가을을 대표하는 물고기로 일컬어지기도 한다.

한여름철의 삼복더위에 지친 몸을 추스르고자 우리 선조들이 찾아낸 보양식이 바로 추어탕이다. 가을 미꾸라지는 추운 겨울을 대비하여 살이 통통하게 올라있어 가장 맛이 좋다. 때문에 추어탕집마다 가을에는 바빠질 수밖에 없다.

순조(1850년) 때 실학자였던 이규경이 쓴 백과사전에 해당하는 <오주연문장전산고>에 추탕두부(미꾸라지두부)라는 말이 언급돼 있다. 미꾸라지의 어원인 ‘밋그라지’라는 말은 19세기 무렵부터 나오고 있다. 밋그리(미꾸리)로 쓰이던 말이 시간이 지나면서 미끌미끌하다는 ‘미끄러지다’에 강아지, 송아지, 망아지 등의 접미사 ‘~아지’가 합쳐져서 귀엽고 작은 물고기임을 강조하기 위해 <미꾸라지>라는 낱말이 탄생한 것이다.

미꾸라지로 만든 음식 중 ‘추어탕’에 관한 기록은 고려말 송나라 사신 ‘서긍’이 쓴 <고려도경>에 처음 나올 뿐 조선조의 기록에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이는 조선시대에 추어탕을 먹지 않아서가 아니라 서민 음식이었기에 기록이 되지 않았을 뿐이다.

미꾸라지의 한자식 단어인 ‘추어(鰍魚)’라는 말은 동의보감에 쓰여 있으며 가을 추(秋)와 고기 어(魚)가 결합돼 만들어진 글자로 말 그대로 ‘가을 물고기’라는 뜻이 된다.

추어탕은 원래 전라도 음식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조리방법에 따라 서울식, 남원식, 원주식, 경북식 등으로 구분되고 있다. 서울에서는 추탕(鰍湯)이라 불렀고 미꾸라지를 갈지 않고 통째로 넣는 점이 일반 추어탕과 다른 점이다.

미꾸라지는 기운을 북돋아 주고 술을 깨게 하며, 양기를 솟게 한다고 알려져 있어 수중인삼(水中人蔘)이라는 별칭이 있을 정도다.

한때 노래(바꿔·바꿔·바꿔)를 유행시켰던 가수 이정현은 TV에 출연 시 “무대의 강한 조명에 시력이 많이 약해졌는데 추어탕을 즐겨 먹은 뒤로부터 다시 정상 시력을 되찾았다.”고 추어탕 예찬론을 펼친 적이 있었다.

앞에서 언급한 실학자 이규경의 추탕두부(미꾸라지두부)는 생두부와 산 미꾸라지를 함께 솥에 넣어 불을 때면 뜨거워진 물을 피해 미꾸라지가 두부 속으로 파고 들었고 약이 오른 채 두부 속에서 죽게 되면 미꾸라지 두부를 함께 썰어서 탕으로 끓여 먹는 방법이었다. 이는 성균관 주위에서 살던 서민들에게는 명물로 소문이 났다. 그뿐만 아니라 마님들이 야밤에 은밀히 끓여내는 ‘사랑의 묘약’이기도 했던 것이 추탕두부다.

미꾸라지의 생김새가 남성의 생식기와 닮아서일까? 명나라 ‘이시진’이 쓴 의서인 본초강목에도 미꾸라지가 양기에 좋다는 기록이 있고 조선시대에는 임신이 힘든 부부들이 추어탕을 끓여서 착상식(着床食)으로 애용했었다고 한다. 이는 임신에 좋다는 토코페롤(비타민E) 성분이 많아서라고 본다.

미꾸라지가 미끌미끌한 이유는 뮤신(mucin)이라는 피부 점액질 때문이다. 뮤신은 암세포의 증식과 전이를 억제하고 피부 노화를 예방해주는 콘드로이틴황산이 많이 포함돼 있다고 한다. 혹시 이 뮤신(mucin)을 이용하여 신약을 개발하면, 피부 노화를 막고 암을 예방하며 무릎관절에도 효과가 있지 않을까, 하고 의학적인 관점에서 생각도 해본다.

지금처럼 비가 많이 쏟아지는 날이면 어릴 적 추억이 떠오른다. 비가 많이 온 날이면 동네의 작은 도랑과 농수로가 빗물로 넘쳤다. 그 물줄기를 타고 거슬러 올라온 미꾸라지가 이 집 저 집 마당에서 이리저리 헤엄치고 기어 다녔다. 사람들은 그 미꾸라지를 잡아서 추어탕으로 끓여 먹었다. 함께 키우던 오리와 거위들도 신이 나서 뛰어다니며 미꾸라지를 낼름 집어삼키는 모습을 지켜보던 어린 시절의 한 풍경이 떠오른다.

문장주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