꾀꼬리(鶯앵)

칼럼
꾀꼬리(鶯앵)
길조, 집에 날아와 울면 경사스러운 일이나 사업이 번창
마음속 꾀꼬리 언제쯤 찾을 수 있을까?
  • 입력 : 2022. 05.13(금) 17:37
  • 화순저널
아파트 층간 소음을 거의 매일 시달리며 사는 현대인들에게 행여 새소리라도 들리면 반가울 수밖에 없다. 아침을 깨우는 아름다운 멜로디에 절로 기분마저 좋아진다.

새들의 울음소리도 새 종류만큼이나 많고 제각각 나름대로 특징이 있다. 뻐꾹뻐꾹, 짹짹, 지지배배, 소쩍소쩍, 끼룩끼룩 등 즐거워서, 그리워서, 서러워서 울고 외로워서도 운다. 특히 꾀꼬리 소리는 입안에서 옥구슬을 굴리듯 울음소리가 아름답고 그 샛노란 모습이 눈에 띄어 예부터 시화(詩畵)와 노래 속의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꾀꼬리 이름의 유래는 울음소리와 관련이 있다. 꾀꼬리는 두시언해에 ‘곳고리’라고 나와 있다. 그 당시엔 꾀꼴꾀꼴 울지 않고 곳골곳골하고 울었을까? 아니면 곳·곳(꽃=花)+골(꼴·모습)의 합성어로 꽃처럼 고운 모습을 한 새 (=곳고리)란 뜻이었을까? 아직 확실하지는 않지만 황금색 옷을 입고 날아다니는 고운 모습인 곳고리가 → 꾀꼬리로 시간이 흘러 변음된 것이라는 견해가 있다.

아름다운 춤을 통해 꾀꼬리를 묘사한 작품으로는 이조 순조 때 효명세자가 지었다는 <춘앵전:春鶯囀>이 있으며 노래로 표현한 작품은 고구려 유리왕이 사랑하는 여인을 떠나보내며 지었다는 황조가(黃鳥歌)가 전해진다,

오늘날에는 1982년 가수 조용필이 작곡한 <못 찾겠다 꾀꼬리>가 있다. 이 노래가 만들어진 데에는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다. 1980년 대마초 사건에 휘말려 방황하던 그가 양산 통도사에 있던 정봉스님(1892~1982)을 만났을 때의 이야기이다.

스님은 조용필을 보더니 대뜸 “뭐 하는 놈인고?” 하고 물었다. 조용필이 자신은 노래하는 가수라고 대답하자 “그래? 노래 한 번 해보그라” 했다. 스님은 노래를 다 듣고 나서 “고놈 참~ 노래 잘한데이, 네 안에 꾀꼬리가 들었구나. 뭔 말인 줄 아느냐?” 조용필이 모르겠다고 하자 “그걸 찾아보거라~”라고 했다.

조용필은 몸 안의 꾀꼬리를 찾으라는 말을 듣고 산을 내려오면서도 찾지 못해 고생하다가 <못 찾겠다 꾀꼬리>가 나오게 됐다고 한다. <못 찾겠다 꾀꼬리. 꾀꼬리. 꾀꼬리 나는야 오늘도 술~래> 라는 가사는 정봉스님이 “이 세상은 연극과 같다. 머리 쓰지 말고 한바탕 놀다가 가거라”고 말한 것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즉, 맘속 깊이 숨어있는 참다운 나(眞我)를 찾다가 지어진 곡이라 할 수 있다.

또 다른 이야기는 고려 중기의 유학자인 이규보(1168~1241)와 의종 임금과의 만남에서 시작된다.

외딴 산속을 산책하던 의종은 이규보의 집에 적혀있는 유아무와 인생지한(唯我無蛙 人生至恨나는 있는데 개구리가 없는 것이 인생의 한)이라는 문구를 보고 의아해하며 이규보에게 그 뜻을 물었다.

옛날에 노래를 잘하는 꾀꼬리와 음치인 까마귀가 살았는데 하루는 까마귀가 꾀꼬리에게 3일간 노래 연습을 한 뒤 노래시합을 하자고 제안했다. 자신만만 꾀꼬리는 흔쾌히 승낙해 3일간 열심히 연습한 반면, 까마귀는 연습을 하지 않고 매일 백로에게 개구리를 잡아서 뇌물로 바쳤다. 3일 후 노래 시합에서 심판관인 백로는 까마귀의 손을 들어주었고 나중에야 이 사실을 알게 된 꾀꼬리는 ‘나는 다 있는데 개구리가 없다’ 유아무와(唯我無蛙)고 한탄했다. 여기서 생겨난 말이 와이로(뇌물)이다. 개구리 와(蛙) + 이로울 이(利) = 백로 로(鷺)를 합친 말이라고 한다.

물론 와이로(뇌물)가 일본 말로 그 진위여부는 확실하지 않으나, 우연히 외딴집의 주인이었던 이규보를 만나 대문에 쓰인 문구에 의종이 깨달음을 느낀 것은 사실이라고 볼 수 있겠다.

예로부터 우리 선조들은 꾀꼬리를 길조로 여겼으며 집에 날아와 울면 경사스러운 일이나 사업이 번창한다고 기뻐했다. 앵(鶯), 황조(黃鳥) 또는 황작(黃雀)이라 부르며 새 중에서 아름답고 소리가 곱기로는 꾀꼬리만한 새가 없다고 칭송했다.

노래를 잘하고 목소리가 예뻤던 가수 박재란(본명 이영숙)의 별명이 꾀꼬리였고 배우 엄앵란의 이름 중 앵(鸚)도 꾀꼬리를 뜻한다. 조선시대 대표적인 풍속화가 단원 김홍도의 그림 마상청앵도(馬上聽鶯圖)에는 버드나무 위 노래하는 꾀꼬리 한 쌍을 과객이 바라보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학창 시절, 학교 뒷동산을 오르면 둥지를 튼 꾀꼬리 한 쌍이 아카시아 나무 아래로 다가온 학생들의 머리를 쪼려고 날아오던 장면이 기억 속에 아직도 남아있다. 새 울음소리를 우리가 보고, 듣고, 느낄 수는 있어도 마음속에 있는 꾀꼬리는 언제 찾을 수 있을까? 찾지도 못하고 잊혀지는 세월이 아쉬울 뿐이다.
화순저널 hsjn2004@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