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부터 농업을 생업으로 삼고 살아온 우리 선조들은 농사 시기인 때(=절節)를 놓치면 1년 농사를 망치기 때문에 4계절의 제철에 맞춰 농작물을 심고 가꾸고 거둬들여야 했다.

4계절에서 절(節)은 마디라는 뜻이고 시절(時節)은 곧 시간의 마디란 말이 된다. 1년을 4마디로 나눠 4계절이라 한 것이다.

제철이 되어도 모르고 놓치면 이를 ‘철부지’라 불렀고 그 원형은 절부지(節不知)이다. 한자로 모른다를 뜻하는 부지(不知)와 + 철(=절:節)이 합쳐져 제철을 모른다는 뜻이 됐다.

시간은 하늘이 준 선물이다. 제때(時)를 맞춰서 꽃도 피우고 열매를 맺도록 하는 것은 자연의 이치를 따르는 것이 된다. 시간을 거스르거나 때를 못 맞추면 철부지가 되어 벌칙으로 하늘의 파테르(parterre)를 받았다. 즉 농사를 망치는 것이다. 뭐가 옳고 그른 것인지 또 할 일과 하지 말 것을 구분하지 못하면 그렇게 되는 것이다.

나도 어린 철부지 시절 그런 적이 있었다. 공부는 안 하고 그냥 시간 가는 줄도 모른 채 친구들과 놀다가 들어오면 “넌 도대체 언제 철이 들래? 멋도 맛도 모르고 뛰놀기만 하고~ 엉!” 호되게 아버지한테서 핀잔받았다. 심하면 회초리도 맞곤 했다.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도 나무의 가지 수만큼 많아서 중요한 것은 남에게 해(害)를 주지 않고 멋과 맛을 알며 사는 것이다.

멋모르고 살다 보면 진 빚도 많고 철부지로 지내다 보면 남는 것도 없기 때문이다. 난 철이 들었는가? 아니면 아직도 철딱서니인가? 한 번씩 자문해보지만 자책하거나 실망해도 안 되고 지난 과거를 물을 필요도 없다는 생각이다.

동양의 경전인 주역(周易)에서는 절(節)을 시기와 계절의 뜻 외에 지혜의 뜻으로도 써왔다. 즉 지혜롭지 못하고 어리석은 경우에 철부지라 표현했다. 어른이 어른답지 못하면 ‘큰 철부지’에 해당되는 셈이다.

예를 들어서, 법을 공부한 법관이 법정에서 제멋대로 하면 철부지 법관이 되는 것이다. 법(法)은 물 수(水)+갈 거(去)가 합쳐서 일 처리를 물 흐르듯 막힘없이 하라는 뜻이다. 막히면 돌아가고 머무르지 말고 현명한 판결을 하라는 것이다. 만약 철부지 법관과 정치인들이 판치는 나라라면 어찌 되겠는가?

이웃 중국에서도 스스로 대국(大國)을 자처하는 중국이 나라의 문제점을 정확히 비판하고 충언한 책을 금서로 지정하고 회수까지 했던 사건이 있었다.

2016년 심리학자인 우즈훙이 쓴 거영국(巨嬰國)이란 책으로<덩치는 큰데 머리는 영아 수준의 철부지 국가>라고 비판한 내용이다. ①편집분열(偏執分列), 모두가 왕(王)이 될 것을 꿈꾸고 권력을 지향하며 자기만이 세상을 가져야 한다는 중국인들의 사고방식과 ②공생교살(共生絞殺), 가족 간에도 이해와 소통 부족 그리고 갈등으로 병든 것 같은 중국의 사회상을 꼬집었는데...

고위층을 비롯해 기업의 사장, 기관장, 심지어 가장(家長)들로부터 미움을 산 것이다. 또한 중화사상의 우월감에 젖어 광적으로 남을 억압하는 불안한 중국의 문제를 정확하게 비판했다는 이유가 컸다.

잘못을 모른 채 이기적으로 살며 뉘우침과 깨달음의 때(時)를 놓치고 있는 철부지 같은 중국인들의 생활 모습에서 과연 웃어야 할지 외면해야 할지, 그렇다고 울어야 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냥 웃어넘기는 것이 나을 것 같다.

국민들이 배우고 깨달아 남에게 잘할수록 주가도 오르고 운(運)도 따르는 법인데 충신을 내치고 왕(王) 자랑만 하는 건 숨기고 싶은 게 많아서일까? 배탈이 났을 때 속을 시원하게 비우고 나면 시원하듯이 뭔가를 숨기려 할 게 아니라 철부지 근성을 버리고 대국(大國)다운 면모를 보일 때 철든 국가로 보일 것이다.

우리 인생도 어렵게 철학적으로 논할 필요가 없다. ‘나’를 버리면 철도 들고 행복해지며 그것이 성공한 인생이고 웰다잉(well-dying)이다. 철이 들면 자연히 자신이 인생 철학자가 되는 것이다.

칸트는 <자신이 할 일이 있고 사랑하는 이가 있고 희망이 있으면 행복하다>고 했다. 모두가 철이 들어 좋은 시절을 놓치지 않아야 철부지(節不知)를 면할 수 있다.

문장주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