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llery Art Digital Imagery] 소년이 온다 글·그림 한광용 화순저널 논설위원 화순저널 hsjn2004@naver.com

2025년 08월 13일(수) 09:42

소년은 눈을 감고 있다. 말없이, 조용히. 피가 젖은 셔츠 위로 한 송이 꽃이 피어난다. 그것은 단지 장식이 아니라, 누군가의 끝에서 자라난 감정의 표지다.

한 시대의 상처를 안은 소년은 이제 그림 속에 서 있다. 소설 속 ‘그날’에서 벗어나지 못한 존재가, 이곳에서 다시 피어난다. 그러나 그를 고통스럽게 재현하지 않는다. 오히려 깊고 절제된 감성으로, 소년이 품고 있는 침묵의 무게를 감싸 안는다.

이 작품은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를 담은 회화이다.

폭력이 지나간 자리, 기억은 어떻게 남아야 하는가. 고통은 어떤 방식으로 예술 속에 존재해야 하는가.

꽃 한 송이로 말한다. 붉게 물든 셔츠 위에 피어난 그것은 고통의 증거이자 애도의 형식이다.
죽음을 외면하지 않되, 혐오나 충격으로 그리지 않는 시선이다. 회화가 가진 윤리의 출발점이다.

색감은 과장되지 않는다. 피는 붉지만 폭력적이지 않고, 배경은 푸른 안개처럼 가라앉아 있다. 뒤틀린 시계와 흐릿한 사람들의 형체, 무너진 풍경은 명확한 이야기를 제공하지 않지만, 그 안에 누군가의 ‘기억’을 남긴다. 시간은 멈추었고, 장소는 해체되었지만, 감정은 그대로 살아 있다.

소년은 상징이다. 고유한 인물이기보다는 시대를 통과한 이들의 내면을 대변하는 존재다. 이 작품은 그를 개인의 비극이 아닌, 모두의 기억으로 환기시킨다. 소년의 침묵은 누군가의 눈빛에 닿고, 감상자의 내면으로 이어진다.

그 앞에서 우리는 침묵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소년이 꽃이 되어 피어난 이 화면 앞에서, 말보다는 감정이 먼저 반응하게 된다.

말하지 않는다. 대신 오래 머문다. 시선에서 지워지지 않고, 마음 한편에서 자꾸 생각나게 만든다. 아름다움으로 가려진 고통이 아니라, 고통 속에서 피어난 아름다움. 그것이 말하려는 윤리이자 미학이다.

소년은 다시 왔다. 눈을 감은 채, 꽃으로 피어.
이제는 우리가 기억할 차례다.

한광용
화순저널 논설위원
전남대학교치과병원 아트스페이스갤러리 디렉터
화순군립요양병원 서암갤러리 디렉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