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순사람들 칼럼> 향기 없는 꽃 세상 박원균 국립호남권생물자원관 전 상임이사 화순저널 hsjn2004@naver.com

2025년 12월 29일(월) 11:43

어느새 우리나라 지역이나 동네마다 꽃천지가 됐다. 올해도 가을을 넘기면서까지 오지게 꽃 구경을 했다. 화순도 남산공원이나 고인돌공원이 꽃 구경 명소다. 그런데 언젠가 전국 어디건 대량 재배된 꽃들에서 향기가 없음을 알아차렸다. 융단처럼 깔린 국화꽃밭에 향이 코 끝에 어슴프레 스칠 뿐이다. 여름철 장미로 유명한 어느 축제장에서도 향을 느끼기 어려웠다. 향이라면 장미가 으뜸인데… 마땅히 꽃을 찾아 잉잉거릴 벌, 나비도 드물다.

광주 효령동 영락공원묘지는 꽃으로 뒤덮여 있다. 고인의 종교나 빈부, 남녀, 수명, 직업에 관계 없이 묘소마다 그 앞에 온갖 꽃들이 한두 다발씩 놓여있다. 과거엔 생화도 가끔 보이더니 요즘은 예외 없이 조화 꽃이다. 죽어서 평등을 이룬 이 영락공원은 다시없을 화려한 꽃의 세상인데, 향기가 한 점도 없는 가상의 공간 같다. 문득 낯설다.

사실 대량 재배된 꽃에서 향기가 거의 없다고 한다, 아시다시피 꽃의 향과 색, 꿀은 수정을 위한 고도의 진화 산물이고, 자연환경과 대면 과정이다. 꽃향기가 사라지는 건 인공이 개입돼 그 목적을 잃은 것이라 하겠다. 끊임없이 품종을 개량하고 재배환경도 노지재배보다 하우스가 많다. 인위적으로 개화 시기를 조정하기도 하고, 일부는 기후변화로 꽃 피는 시기가 달라졌을 수도 있다.

최근에는 DNA 변형이나 신품종개발과정에서 향기 유전자를 약하게 하거나 제거하기도 한다고 한다. 대량생산과 유통을 위해 향기보다는 외형이나 수명, 운송 편의와 수익에 초점을 맞춰 재배하다 보니 향이 약해졌다는 설명도 있다. 생명성 유지보다 상품성을 높이는 게 더 중요해진 것이다, 유기농처럼 비교적 자연 상태의 식물이 맛과 색, 향이 더 두드러진다는 경험을 누구나 한다.

세계는 지금 웹, 가상현실 등 상상의 공간이 활짝 열렸고, AI 등 초지능 기술로 특이점을 향해 내달리고 있다. 가상과 일부 현실이 뒤섞인다. AI와 인간, 기계와 인간의 인터페이스 진행이 되돌릴 수 없는 상황이다. AI와 뇌의 인터페이스로 신경과 감각까지 통제하는 사례가 잇따른다. 후각을 비롯한 감각을 조절이 아니라 창조해 간다고 해도 억지가 아니다. 두렵지만 곧 마주할 세상이다.

겨우 국화 꽃한송이 들고 무슨 향기 타령이냐고 누군가 힐난할 수도 있겠다. 또는 조화든 향기 없는 꽃이든 찾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보기 좋으면 그만 아니냐는 생각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향기 없는 꽃은 세계가 극단으로 가는 전조 아닐까 하는 의심을 부른다. 실제 그런 경고도 많다. 인류 역사의 전개가 ‘개벽’으로 새 세상으로 나갈지 ‘종말’일지 알 수 없이 거대하고 혼돈스럽고 내가 도저히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아예 각자 온전히 나 자신으로 돌아오는 것이 최선의 대응법이 아닐까.

작은 씨알에 우주가 있다는 함석헌 선생이나 내 안에 하늘님을 모시고 있다는 해월 선생의 말씀을 공부하고 있는 나에게 국화 꽃향기는 우주이고 하늘님이다. 화순의 어느 길이건 저마다 짙은 향을 내뿜는 온갖 꽃들로 가득하고, 벌, 나비가 지천이면 좋겠다. 거기다 누군가 같이 걷는 사람들이 옆에 있다면 더 좋겠다. 화려하나 말라 버석한 웹 세상이 아니라 온전히 내가 느끼는 세상을 상상한다.

박원균
국립호남권생물자원관 전 상임이사
광주전남 민언련 전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