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순사람들 칼럼> 400년 그리움의 무게를 버텨온 운농리 왕버들 화순의 나무 이야기 ⑥ 화순저널 hsjn2004@naver.com |
| 2026년 04월 07일(화) 14: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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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의 이름이 왜 ‘왕버들’인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그 형체가 웅변하고 있다. 수백 년을 거뜬히 살며 아름드리로 자라 거목이 된 모습이 마치 세상의 모든 생명을 품는 압도적인 존재감과 최고의 기개를 갖추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 나무의 또 다른 별칭인 귀류(鬼柳)이다. 왕버들은 오래될수록 줄기 안쪽이 잘 썩어 커다란 구멍이 뚫리는 특징이 있는데, 그 어둡고 깊은 공동(空洞)이 마치 귀신이 머무는 집 같기도 하고 신비로운 기운을 뿜어낸다고 하여 그렇게 불리게 되었다. 운농리 왕버들의 거친 껍질 속에 숨겨진 400년의 기억은 어쩌면 그 깊은 나무 구멍 속에 쟁여진 세월의 비망록일지도 모른다.
예부터 우리 민족에게 버드나무는 생명의 태동을 알리는 상징과도 같았다. 고구려의 국모 유화(柳花)부인의 이름에 버들꽃의 의미를 담은 것은 매서운 추위를 뚫고 물가에서 맨 먼저 푸른 빛을 틔우는 버드나무의 생명력이 새로운 나라를 세우는 근원적인 힘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그 신화적 생명력은 이곳 화순의 땅에서도 이어진다. 400년 전, 어진 이들이 사는 땅이라 불리던 인면(仁面) 시절부터 이 나무는 구름이 머무는 산 아래 마을의 수맥을 지켜왔다.
나는 왕버들의 비틀린 몸체와 생명력을 볼 때마다 시대를 가로지르는 한 여인의 절절한 사랑을 떠올린다. 조선 선조 때, 삼당시인 고죽(孤竹) 최경창과 기생 홍랑의 이야기이다. 함경도 경성에서 최경창과 깊은 인연을 맺었던 홍랑은 그가 한양으로 떠나게 되자, 관기라는 신분 탓에 함관령 고개에서 눈물로 이별을 맞이한다. 그때 그녀는 비 내리는 산속에서 버들가지 하나를 꺾어 보내며 다음과 같은 시조를 읊었다.
산버들 꺾어 천 리 밖 님에게 보내오니
나를 위해 부디 뜰 앞에 심어 두고 보소서.
하룻밤 지나 새잎이 돋아나면
초췌하게 시름에 젖은 눈썹이 바로 저인 줄 아소서.
조선 최고의 시조집인 《청구영언》에 전해지고, 최경창의 문집 《고죽집》 속에 한시 〈번방곡〉으로 번역되어 그 애절한 사연을 증명하고 있는 이 노래에서 홍랑이 수많은 나무 중 하필 버드나무를 택한 까닭은 꺾인 채 땅에 꽂혀도 기어이 뿌리를 내리는 버드나무의 강인한 생명력 때문이었다. 비록 몸은 천 리 밖에 떨어져 있을지언정, 임의 창가에서 새잎으로 피어나 영원히 곁을 지키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이 그 버들가지 끝에 매달려 눈썹처럼 다가가고 싶었다.
홍랑이 꺾어 보낸 버들가지에 임을 향한 절절한 연모를 담았듯, 이곳 운농리 왕버들에도 그 옛날의 애틋한 마음이 서려 있는 것일까. 사랑하는 이를 기다리는 그리움의 무게가 오죽 버거웠으면, 저토록 고단하게 몸을 비틀어 세월의 하늘을 받쳐 내고 있다. 400년을 늙지 않는 사랑처럼, 다시 봄이면 왕버들은 연두색 희망을 켠다. 겉은 거칠고 속은 비어 있을지언정, 그 속에는 억겁의 세월을 이겨낸 생명의 수액이 요동치고 있다.
진정한 사랑과 그리움은 세월 속에 소멸하는 것이 아니라, 거친 나무껍질을 뚫고 돋아나는 새잎처럼 매 순간 다시 태어나는 것이라고 운농리 왕버들은 오늘도 묵묵히 제 자리를 지키며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혹시 동면을 지나가거든 연둣빛 그리움이 일렁이는 운농리 왕버들 아래서 우리 안에 잠들어 있던 소중한 이름 하나를 꺼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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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림치유지도사
숲해설가
화순저널 hsjn2004@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