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묵화 작업 중인 봉산 정재경 선생

봉산 정재경 선생(이하 봉산 선생)을 알고 지낸 지는 십수 년이 넘었다. 꽤 긴 세월 동안 이어진 한 모임의 소속 회원으로 봉산 선생과 본 기자는 같이 참여해 왔다. 봉산 선생은 모임에 참석할 때마다 한쪽 편에 조용히 앉아 다른 이들의 열띤 주장이나, 회원 간에 오가는 대화들을 경청하다가 자리가 끝나면 일어서곤 했다. 때문에 그동안 봉산 선생을 교직에 몸담고 있으면서 참교육을 위해 소신껏 참여하는 미술 교사 정도로만 알고 지냈다.

그런데 몇 년 전 도서벽지의 중학교로 발령받아 내려간 후부터 가끔씩 모임 자리에 참석하게 되면서부터 그림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종종 전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봉산 선생의 작품과 작품세계에 대해 알 턱이 없었기에 귀담아듣지 못하고 흘려보냈다.

올해 다시 그가 화순의 제일중학교로 부임하게 되면서 본 기자는 처음으로 그가 가꾸고 있는 ‘봉산문인화연구소’이자 ‘봉산화실’에 방문하게 됐다. 그러면서 ’봉산 선생에 대한 이력과 작품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게 됐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했던가. 대가를 몰라보고 세월을 보내버린 것이 못내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 전, 하루가 저물어 가는 시간 즈음 봉산 선생의 화실로 찾아갔다. 서창으로 길게 늘어져 들어온 햇살이, 여름인데도 따갑게 느껴지지 않고 밝고 다사로웠다. 봉산 선생의 성품을 닮은 화실의 분위기에 마음이 내내 편안하다. 그가 그동안 읽고 연구해 온 분야의 고서들과 전문서적들의 무게가 묵향처럼 깊다. 그를 지켜보고 있는 그의 스승들의 눈빛이 담긴 액자들, 화실 사방으로 걸려 있는 그의 작품들....

봉산문인화연구소/봉산 작품

봉산 선생 작품에 주요 소재로 쓰이는 것들이 몇 가지 있다. 사군자 외, 갈매기, 독수리, 독도, 무등산, 금강산, 해남 땅끝 풍경 등등이다.

독수리, 대한민국미술대전 최우수상작

갈매기와 독도, 바다 풍경이 많은 것은 섬 생활의 영향도 있다. 그러나 그보다는 리처드 바크의 ‘갈매기의 꿈’에서의 주인공 ‘조나단’처럼 아이들도 큰 꿈과 희망을 품길 바라는 마음을 담고자 갈매기를 주요 소재로 많이 표현했다.

독도 작품이 많은 것은, 일본이 우리의 독도 영해에 묻혀 있는 지하자원이 욕심 나서 자꾸 침범해 빼앗아 가려고 하니까 독도가 대한민국 영토임을 국제적으로 알리고자 독도 풍경을 화폭에 담게 됐다.

독도장군바위

독도와 갈매기를 다 화폭에 담은 작품도 있다. 독도를 배경으로 해서 스물한 마리의 갈매기가 창공을 날고 있는데 바로 21세기를 상징하는 그림이다.

작품 속의 갈매기 한 마리 한 마리는 우리 학생들이다. 학생 중 누군가가 리더가 되어 모든 새들을 이끌고 나는 봉황새처럼 되길 바라는 봉산 선생의 꿈을 담은 것이다.

21세기의 상징, 독도와 21마리의 갈매기

무등산의 입석대와 서석대는 세계적으로 유일하게 0위 1,000미터에 있는 주상절리이다. 모든 주상절리는 해안가를 중심으로 해서 고도 0위에서 10미터에서 20미터로 형성돼 있다. 화순군 이서면에 소재한 입석대는 우리나라 천연기념물 465호이다.

봉산 선생의 작품세계는 이렇듯 제자들에 대한 기대와 희망, 지극한 애정이 담겨 있다. 또한 일본이라는 외세에 대한 저항의식과 나라 사랑도 담고 있다. 뿐만 아니라 화순의 산하에 대한 각별한 애정이 그의 붓끝을 타고 흐르고 흘러 백두에서 한라까지 다 채우고도 넘칠 것 같다.

봉산 선생은 현재 2022년도 세종문화회관 본관에서 전시할 ‘백두에서 한라까지’라는 통일 염원을 담은 개인전 작품들을 만들어 가고 있다.

자화상

봉산 선생은 비록 시골의 작은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훈장 같은 교사이지만 그의 가슴은 우리 민족의 대업인 통일의 염원을 품고 있다. 우리의 아름다운 산하를 통일염원의 정신과 혼을 담아 온몸으로 그려가고 있다.

이렇듯 그의 작품들은 예술성만을 추구함으로써 현실과 동떨어져 있는 관념의 세계만을 담지 않는다. 현실에 발을 딛고 살아가는 세계의 담론과 추구해 나가야 할 가치를 작품에 구현해 내고 있다.

때문에 봉산 선생은 한국화단의 지평을 새롭게 열어가는 작가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전통적인 한국화가 가진 관념적이고 상투적인 모티브를 극복해 나갈 뿐만 아니라 동양화의 회화적 틀까지 개혁시키고자 끊임없이 노력하는 작가로 정평이 나 있다.

봉산 선생에게는 ‘아석雅石’이라는 호가 하나 더 있다. 스승 금봉 박행보 선생이 지어준 것이다. 금봉 선생은 의제 허백련 선생의 수제자이다.

돌은 말에 능숙능란하지 않아도 나의 스승이 된다는 ‘석불능언위아사石不能言爲我師’에 나오는 돌이 천년만년 평생 봉산의 스승이 되길 바라신 금봉 선생이 ‘돌 석’자에다가 봉산이 태어난 전북 고창 아산면의 ‘아’자를 따 ‘雅石’이라 지어주었다. 이 ‘아雅’자는 ‘아름답다, 우아하다, 고상하다’의 뜻을 품고 있다.

봉산 선생이 스승 금봉 박행보 선생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은 대학 시절 서예를 지도해 주셨던
우송 이상복 선생의 영향이 컸다.

봉산 선생이 대학에 들어가던 시기에는 국립사범대를 들어가는 것이 보통 실력으로는 좀 어려웠다. 사범대학 1학년으로 들어가자마자 바로 선생님으로 대우를 해 줬고 졸업하자마자 임용시험도 안 보고 교사로 바로 발령도 시켜주던 시절이었다.

대학 1학년인 정재경은 글씨를 좀 잘 쓰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서도반에 들어갔다. 그런데 지도 교수님이 대한민국미술대전 서예분과의 심사위원장을 하시던 우송 이상복 선생이었다. 그런 분이 계신 줄도 모르고 서도반에 들어갔다.

그런데 그때는 MT를 1주일씩 가고 그랬던 시기였다. 지도 교수였던 우송 선생은 체격이 왜소하셨는데 채식만 하신 분이었다. 한마디로 도인 같은 분이었는데 말씀도 없으시고 그래서 대학생들이 쉽게 다가설 수도 없는 분이었다.

MT를 하는 동안 무슨 일이 있으면 학생 정재경은 얼른 가서 물을 떠다 교수님께 먼저 드리고 남은 것을 본인이 먹고 그랬다. 보이지도 않게 몇 번 그렇게 했는데 그때 이상복 교수께서 봉산을 눈여겨 본 것이다.

우송 선생이 봉산을 가리키며 다른 학생들에게 저 학생은 어느 대 무슨 과를 다니냐고 물었다. 사범대학 미술교육학과라고 하니, 저 친구가 선생님이었네 하시더란다. 1학년 때 벌써 선생님으로 대우해 주신 것이다.

이상복 교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호를 지어주는데 그 수가 수천 명에 이른다. 그중에서 봉황새 ‘봉’은 유일하게 제자 정재경에게만 주었다. 학 ‘학’자는 몇 사람한테 줬는데 ‘봉’자는 봉산에게만 지어 준 것이다.

우송 선생은 봉산을 가리키며 저 학생이 교실에서 수없이 많은 새들을 이끌고 가는 리더 봉황이 될 수도 있어 하시면서 내려준 호가 바로 ‘봉산鳳山’이다.

우송 이상복 선생하고 금봉 박행보 선생은 연령대도 비슷하시고 해서 대한민국미술대전에서 같이 심사를 하고 심사위원장도 맡고 그러신 분들이라 유대관계가 아주 좋았다.

당시 봉산이 글씨도 쓰지만 그림도 했으면 좋겠다고 우송 선생에게 말씀드리니, 금봉 선생을 소개하면서 인덕과 학덕이 아주 높은 분이니까 찾아뵙고 열심히 그림을 배우라고 하셨다.

그래서 금봉 선생에게 그림을 배우게 됐는데 굉장히 혹독하게 가르침을 받았다. 금봉 선생은 본인이 최고이기 때문에 제자들도 최고가 되길 바랐기에 아주 혹독하게 가르침을 주었다.

우송 이상복 선생과 금봉 박행보 선생, 이 두 분의 스승 덕에 봉산은 글씨와 그림 실력을 겸비한 작가가 될 수 있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그림만 그리는 미대를 나왔는데 글씨를 쓸 줄 알겠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미대를 나온 장학사들과 교육장들은 봉산 선생의 글씨를 선호한다. 단순한 글씨가 아니라 그림 같기도 하고 회화적이기도 한 그런 게 있어서다. 그래서 봉산 선생에게 글씨를 써 주라고 하는 이들이 많다. 분야를 가리지 않고 서예대전, 미술대전, 문인화 대전에서 큰 상을 받고 하는 이유가 바로 글씨든 그림이든 탄탄한 내공이 갖춰져 있어서 가능하지 않았을까.

봉산 선생의 작품들에 대한 이야기와 스승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다보니 시간이 훌쩍 건너뛴다. 더 많은 것들이 궁금하고 알고 싶었지만 다음 만남을 기약하고 아쉬운 발걸음으로 화실을 나섰다.

봉산 선생은 특별히 첫 시작을 하는 ‘화순저널’ 신문사를 응원하고 격려하기 위해 정론지로 또 별 힘없는 이들에게는 따뜻한 언론의 역할을 하라는 혼을 담아 제호를 써 주었다.

앞으로 2년 후, 백두에서 한라까지 한반도를 품에 안고 포효하는 畫家 봉산 정재경의 작품들이 세종문화회관 본관에서 어떻게 선보일지 벌써 기다려진다.

삶의 동반자

《프로필》
봉산(鳳山), 아석(雅石) 정재경(鄭在炅)
- 금봉 박행보, 사사
- 제37회 대한민국미술대전 문인화 부문 최우수상(2018)
- 제28회 대한민국미술대전 문인화 특선
- 제21회 대한민국 서예대전 문인화 특선
- 제9회 대한민국 문인화대전 특선
- 제18회 어등미술대전 대상
- 제4회 전국 소치미술대전 문인화 특선
- 제7회 갑오 동학 미술대전 문인화 우수상
* 대한민국 미술대전(국전) 초대작가
* 대한민국 문인화대전 초대작가
* 광주비엔날레와 함께하는 메트로갤러리 기획 개인전
* 비엔날레 초청 시민과 함께하는 소통전
* 이태리 밀라노 엑스포 기념 [한국 미술의 오늘 전]
* 하계유니버시아드 대회 광주국제현대미술전[비엔날레미술관]
* 인도한국문화원 초청 서예교류전
* 전라남도 미술대전 초대작가 심사위원
* 광주광역시 미술대전 초대작가 심사위원
* 전국 무등 미술대전 초대작가 심사위원

최우수상 후 작품 앞에서

2018년 대한민국미술대전 시상식에서

E-mail : jjk9669@naver.com
Tel : 010-9669-9922
봉산 문인화연구실 운영
(070-7528-9669)
전남 화순군 화순읍 향청리52 미래타워 417호
현) 화순제일중학교 재직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