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석천과 능주뜰. 경전선 무궁화호 차창에 비친 풍광.

“화순군에는 향교(鄕校)가 세 곳이나 있습니다. 다른 지역은 한 곳 뿐인데 강남처럼 교육열이 높았다고나 할까요.”

웃자고 하는 이야기다. 화순의 특징을 이보다 더 잘 표현한 우스개는 없을 듯하다. 그만큼 설명이 쉽지 않다는 뜻이기도 하다. 향교는 고려와 조선 시대 지방관청에서 운영하던 지방 교육기관이다. 요즘으로 치면 국립 중고등학교라 하겠다.

화순군(和順郡)은 전라남도 정중앙에 있다. 22개 지자체 중 고속도로가 지나지 않는 유일한 지역이기도 하다. 동쪽은 산이, 서쪽은 들판이 자리 잡았다. 산은 높아도 험난하지 않고, 들판은 넓어도 아담하다. 그래서인지 산골 따라 물길 따라 들어선 마을은 편안하고 정겹기 그지없다. 과히 조화롭고 순한 고장이라고 할만하다.

화순의 역사는 오래되었다. 능주목의 옛 이름인 ‘능성’은 통일신라 때부터, 화순이라는 지명은 고려 때 처음 사용됐다. 두 고을이 합치고 흩어지기를 반복했다. 일제 강점기 때 동복현이 더해져 지금의 화순군이 되었다. 그래서 향교가 셋이다.

사람들은 강을 중심으로 모여 살았다. 농사를 짓고 이동하기에 편리해서다. 메소포타미아 문명, 인더스 문명, 이집트 문명, 황하 문명을 4대 문명의 발생지라 한다. 이들도 모두 큰 강을 끼고 있고, 농사에 어울리는 땅을 갖추었다.

화순도 다르지 않다. 동복현은 동복천을, 능주목은 지석천을, 화순현은 화순천을 중심으로 발전해왔다. 지리가 다르면 인문도 다를 수밖에 없다. 강을 중심으로 세 갈래로 나누어 살펴야 제대로 이해했다고 할 수 있겠다.

동복천은 백아산에서 시작한다. 이서면 동복댐에서 무등산 물과 만난다. 동복면과 사평면을 지나 주암댐에서 보성강과 만나 섬진강으로 흘러든다. 산이 많고 농토가 좁다. 풍광이 좋다. 동복면이 중심이고 조선 때는 동복현감을 두었다. 화순 팔경 중 백아산 하늘다리, 이서 규봉암, 이서 적벽, 동복 연둔리 숲정이가 이곳 물줄기에 속한다. 인물로 삿갓 김병연과 화백 오승우, 경제학자 박현채가 있다.

지석천은 봉화산이 발원지이다. 쌍봉사 앞을 흐르는 물과 이양과 청풍에서 내린 물 등 여러 물줄기가 합해진다. 상류는 계류천을 이루면서 경전선 철도와 나란히 흐른다. 이양면 청풍면을 지나 능주면에서 화순천과 합류한다. 도곡면에서 세량지와 온천에서 오는 물도 보탠다. 나주시 남평읍을 지나 금천면에서 영산강을 만나 서해로 흘러든다. 산이 낮고 들이 넓어 생산력이 높다. 능주면이 중심이고 조선시대에는 능주목사가 다스렸다. 쌍봉사, 고인돌 유적지, 송석정, 운주사 등이 있다. 역사적인 인물로 정암 조광조와 학포 양팽손을 먼저 꼽는다.

화순천은 무등산 남쪽 자락 안양산 아래 어림재에서 발원한다. 동면을 지나 화순읍에 이르러 무등산 서쪽면에서 흘러든 물을 모아 능주까지 이르는 너른 들판을 기름지게 만든다. 능주에서 지석천으로 흘러든다. 무등산 등반이 시작되는 만연산, 전라남도 선정 4월의 으뜸 숲 환산정, 수만리 철쭉공원, 화순탄광, 만연사를 둘러볼 수 있다. 다산 정약용과 인연이 깊은 곳이다. 1777년 17세의 다산은 형 약전과 함께 화순현감으로 부임한 아버지를 따라와 만연산 동림사에서 공부를 했다.

화순(和順)은 두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동복천 줄기의 사람들은 농토가 좁지만, 풍광이 좋아 야박하지 않고 인심이 후했다. 서로를 도우며 조화(和)로웠다. 이곳의 인심은 김삿갓이 말한다. 생전 세 번을 찾았고 생도 이곳에서 마감했다. 얼마나 인심이 좋았을지 미루어 짐작할 만하다. 화순천과 지석천 사람들은 땅이 넓어 풍족했다. 도리를 거스르지 않고 순(順)했다. 이곳의 땅심은 ‘최항’이 증명했다. 고려 무신정권 최항(崔沆, 1209~1257, 제3대 최씨 집권자)의 본래 이름은 ‘최만전’이었다. 쌍봉사에 터를 잡고 많은 재물을 모았다고 하니 그 생산력을 알만하다.

화순을 여행하려면, 아니 화순을 이해하려면 세 곳의 물길을 따라 살피는 것이 바람직하다. 역사와 인물과 음식이 지리를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취향 따라 다르겠지만 굳이 우선순위를 정한다면 지석천에서 시작하여 동복천을 둘러보고 화순천에서 마무리하는 게 좋겠다. 그 출발점은 각각 쌍봉사와 백아산 하늘다리와 만연사가 될 것이고.

지석천을 화순 답사 일번지로 권한 것은 아마도 세월이 아닐까 싶다. 선사시대부터 시작한 삶이 지금에 이르기까지 물길 따라 도도히 흐르고 있다. 청동기 시대인 3000년 전에서 2500년 전을 전후한 고인돌 유적, 통일신라와 고려의 쌍봉사, 조선의 조광조 유배지·초분지. 일제 강점기 중국 3대 음악가 정율성 고향집,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이정표를 간직한 간이역인 능주역. 성자 이세종, 천불천탑의 운주사, CNN이 극찬한 세량지 등.

강변에 앉아 조약돌을 들추면 장구한 세월의 역사와 문화와 전설과 신화가 금방이라도 살아나 그 사연을 들려줄지도 모를 일이다.

민선 8기 화순 군정은 관광객 500만 시대를 선포했다. 그리고 고인돌 유적지를 주목했다. 화순 8경 중 제4경으로 2000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곳이기도 하다. 이곳을 화순 관광을 선도하는 첨병(尖兵)으로 내세워 사계절 축제 장소로 지정했다. 지금은 바늘 끝 같은 햇살이 내리꽂히는 불볕더위를 이겨내고 가을 축제 준비로 구슬땀이다.

화순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도 나아가고 있다.

쿰파니스 화순저널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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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쿰파니스(cumpanis)'는 '함께 빵을 먹다'라는 뜻의 라틴어로 '반려(companion)'의 어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