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수아비도 정년퇴임(?)의 순간이 올까?

칼럼
허수아비도 정년퇴임(?)의 순간이 올까?
속이 빈 아비라는 뜻에서 유래한 허수아비
비 맞은 채 젖어있는 모습은 인생의 허무함마저 느끼게 해
  • 입력 : 2023. 10.05(목) 14:15
  • 문장주 화순저널 칼럼니스트
5,000년의 우리 농경사회에서 허수아비를 모르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허수아비란 뜻은 속이 빈 아비라는 뜻에서 유래가 되었지만 그에 관한 전설은 지방과 시대 별로 차이가 있다.

정읍지방에서 내려오는 옛 전설을 보면 『먼 옛날 부부가 잘 살고 있었는데 아내가 매우 힘든 병을 얻었고 백약을 써봤지만 낫지 못하고 3살 먹은 딸을 두고 세상을 떠났다. 딸의 이름은 허수였다. 그 후 아버지는 계모를 얻었는데 계모는 매일 딸을 구박했다. 보다 못한 아비는 매 맞는 딸을 깊은 산으로 데리고 가서 버리고 도망쳐 와버렸다. 5살 먹은 딸 허수는 밤새 울다가 불빛을 발견하고 걷고 쓰러지기를 반복하면서도 걸어간 곳은 큰 기와로 지어진 부잣집이었다.

그 집은 아들만 있고 딸이 없어 반갑게 허수를 맞아주었다. 그 뒤로 10년이 흘러 나라에서 왕자의 세자빈을 뽑기로 했는데 논의 새를 잘 보는 사람을 세자빈으로 뽑겠다는 벽보를 곳곳에 붙였다. 그런데 허수가 망을 보는 논에는 참새 한 마리 얼씬거리지 않았다. 허수의 애비가 딸을 위해 참새 망을 보다가 지쳐서 쓰러졌고 죽은 허수아비를 본 참새들이 모두 도망쳤다고 한다.』 그 뒤부터 허수아비라는 말을 쓰게 됐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다른 지방의 전설도 많지만 정읍에서 전해지는 호남지방의 전설이 가장 적절하여 소개했다.

허수아비는 새와 짐승으로부터 곡식을 보호하기 위해 막대기와 짚으로 사람 모양을 만들어서 논밭에 세워 놓는 것을 말한다. 한자로는 (안산 자)라고 하며 중국 송나라의 전등록(傳燈錄)에 기록되어 있다. 농경사회의 시작과 더불어서 허수아비도 시작된 것으로 추측된다.

가을 들녘에 황금물결처럼 나락이 익을 때면 참새를 쫓는 허수아비가 어김없이 등장했다. 요즘 참새는 약아빠져서 가짜인 줄 알고 허수아비 어깨에 앉기도 할 정도라서 그래서 모형 독수리와 대포까지 등장했다. 허수아비도 참새와 싸우고 이제는 사람들과도 싸워야 한다. “왜 허수아비만 있고 허수어미는 없나?” 고 하는 남녀평등에 어긋난다는 비난에서부터 시작해 “치마저고리를 입혀라~!”고 하는 주장도 허수아비는 감내해야 한다.

그 뿐만 아니다. “허수아비도 제구실 못한다” 는 구설수에서부터 전형적인 허수아비를 걸핏하면 집회 시위할 때 희생양처럼 불태우는 화형식까지 당하니 말이다. 허수아비는 죄가 없다. 죄가 있다면 새 쫓느라 오래 서있는 죄밖에 없다. 오히려 허수아비의 외로움을 달래줘야 한다. 참새 때와 맞서 홀로 서있고 겨우 찢어진 농립 하나 쓰고 논 가운데 서있는 모습이나 쫄딱 비를 맞은 채 젖어있는 모습은 인생의 허무함을 느끼게 까지 한다.

현대식 새 쫓는 기계의 등장과 더불어 허수아비의 인생도 마지막인가 싶다. 지나간 인생의 추억거리로 전락하고 있고 지방의 축제 주인공으로 겨우 등장할 정도다.

앞으로 농경사회의 농사도 사라지면 허수아비도 정년퇴임(?) 해야 할지도 모른다.

문장주
화순저널 칼럼니스트
문의원 원장
문장주 화순저널 칼럼니스트 hsjn2004@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