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최영미는 격동기 한국 사회의 피 끓는 청춘들이 경험했던 좌절, 분노와 저항, 그리고 그들이 겪어야 했던 고뇌를 한탄했다. 서른, 잔치는 끝났다고. 청춘은 잔치의 시절이다. 누군가 아프니까 청춘이라고 했던가. 삶의 역동성, 그 이면에는 고뇌와 진한 슬픔이 배어있게 마련이다. 살아있는 그 어떤 존재라도, 사람도, 세상도 모두 그렇다.

말 많고 탈 많았던 제22대 총선이 끝났다. 용광로처럼 펄펄 끓는 우리 사회를 들여다보는 시간이었다. 잔치가 끝난 뒤의 허무처럼, 한바탕 태풍이 휩쓸고 간 고요를 느낀다. 마치 언제 무슨 일이 있었느냐는 듯 고요하다.

민주당 압승, 국민의 힘 참패! 제22대 총선의 성적표다. 선거 종료와 함께 전해진 출구조사 결과 발표는 윤석열 정부의 숨 막히는 2년간 답답하게 막혀 있던 국민의 가슴을 시원하게 해 주었다. 그러나 200석의 기대가 무산되면서 희비가 엇갈리고, 다가올 고통에 대한 두려움과 아쉬움 역시 숨길 수 없었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시작된 국정기조는 국민의 보편적인 상식과 달리 ‘마이웨이’로 일관했다. 정권 출범과 함께 시작된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이태원 참사에 대처하는 자세,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행보는 과연 이 정부가 대한민국 정부인가를 의심케 했다. 윤석열 정부가 어디로 갈 것인지, 그때 우리는 이미 알아봤다. 윤석열의 본색과 검찰 독재의 마각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채양명주라는 조어로 회자 된 윤석열 정부의 국정운영은 안하무인 그 자체였다. 과거 유신시대나 5, 6공화국 군사독재 시절이 차라리 양반이었다는 비아냥처럼. 무지, 무능, 무도. 3무 정권임을 드러낸 검찰 독재는 총체적 난맥과 일방통행으로 치유가 불가능했다.

문재인 정부 시절의 정치·경제·사회적 지표와 비교해보더라도 지난 2년은 거대한 퇴행의 시간이었다. 민주주의는 윤석열 정부 출범 2년도 채 되지 않아 외신으로부터 ‘독재화가 진행되고 있다’라는 경고를 받을 정도로 망가졌다. 민생은 짓밟혔고, 국가 경쟁력은 끝없이 추락했다. 이태원 참사와 주요 정치 사안에 대한 국민 무시, 마이동풍식 태도는 돌이킬 수 없는 민심의 이반과 불신을 초래했다.

특히 총선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자신들에게 불리한 현실을 은폐하려는 노력이 가증스러웠다. 채상병 죽음의 진실을 밝히고 책임져야 할 이종섭 장관을 호주 대사로 임명해 빼돌리는 행보, 황상무 수석의 시대착오적 회칼 발언 등은 윤석열 정부의 도덕적 수준을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이러한 행실은 국민들의 공분에 기름을 부었다. 윤석열 정부에는 더 이상 기대할 게 없다.

윤석열 검찰 독재의 탄생은 불철저한 민심 반영의 결과였다. 촛불혁명을 통해 보여준 민심을 정치적으로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외면한 탓이다. 검찰 독재의 일방통행은 거대 야당 내부의 타협적이고 불철저한 반촛불 세력이 불러온 참사라 할 수 있다.

철저한 정치개혁을 이루지 못한 문재인 정부, 180석 거대 야당의 무능은 큰 반동을 불러왔다. 이것은 불철저한 혁명의 대가이자 원죄다. 국민들은 그 어떤 정치권력에도 더 이상 기대하지 않게 됐고, 정치적 무관심과 허무주의에 빠졌다.

기성 언론은 여론조사와 뉴스를 통해 누가 더 검찰 독재를 위해 충성하는지를 경쟁했다. 언론은 이미 관변으로 전락했고, 기성 매체는 레거시 미디어로 불신받는다. 국민들은 이제 뉴스를 믿지 않는다. 더 이상 종이 신문과 TV 채널을 보지 않고, 유튜브와 소셜미디어를 통해 국민 스스로 커뮤니케이션을 주도하기 시작했다.

선거가 끝났으니 이제 과거를 돌아봐야 할 것이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복기하는 시간인 것이다. 거대하게 진행 중인 역사적 퇴행을 막아야 할 때다. 이번 총선은 제2기 촛불 정부의 시작이다.

공천과정에서 보여준 친명·비명 논쟁의 본질은 반촛불 세력을 걸러내는 과정이었다. 적전분열과 자중지란을 일삼는 세력은 국민의 손에 의해 심판받았다. 87년 6월 항쟁과 촛불혁명의 전통을 되살리고, 제 2기 촛불 정부를 세우기 위해 준비해야 한다.

우리의 목표는 분명하다. 87년 체제의 한계를 극복하고, 개헌을 통해 새로운 민주공화국을 창출하는 것이다. 이는 곧 미완의 촛불혁명을 완수하는 것과 같다. 신자유주의와 냉전의 회귀를 막고, 수구세력의 부활을 막는 것이다.

잔치는 끝났다. 하지만 잔치가 끝난 뒷자리는 여전히 어지럽다. 동서는 여전히 나뉘어 있다. 수구세력은 단단히 똬리를 틀고 기득권을 지키고자 웅크리고 있다.

윤석열 검찰 독재는 총선이 가져온 국민적 요구와 명령보다, 구조적 변화가 이루어지지 않았음에 무엇보다 안도하고 있을 것이다. 야당의 단독 개헌과 탄핵소추가 불가능한 현실을 다행으로 여기며 마이동풍식 국정운영을 계속할 것이다. 과거와 같은 극한 대립 속에서 민생은 길을 잃을 것이고, 혹세무민은 여전할 것이다. 큰 틀은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길은 있다. 물이 100도에서 끓어오르듯 이 민심이 바닥에서 끓어오르며 임계점을 향해 가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느끼고 있다. 6월 항쟁과 촛불혁명은 현재진행형이다. 이번 선거는 뭉치면 이길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더디지만 서서히 그때가 오고 있다. 22대 국회는 김건희 특검법, 채상병 특검법으로 시작해 검찰 독재의 본질을 밝혀내야 한다. 그들이 더 이상 준동할 수 없도록 국민들로부터 격리해야 한다. 그리고 다가오는 대선을 제7공화국을 여는 국민 승리의 시간으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문행주
전 전남도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