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순 쌍산항일의병장 양회일 장군의 직계 증손 양금열 씨가 증조할아버지인 양회일 장군의 생가터를 알리는 표지석을 어루만지고 있다.

1905년 을사조약 이후 일본은 우리나라의 주권을 빼앗아 가기 위한 무도한 만행을 저지르기 시작했다. 일본의 손발이 돼 앞장선 왜경과 일본군에 맞서 목숨을 걸고 항전한 화순의 대표적인 의병장 양회일 장군의 증손자 양금열 씨를 본지 인터뷰 석에 초대해 양회일 장군에 대한 일화와 대대로 겪어야 했던 아픔, 그러나 긍지를 가지고 꿋꿋하게 살아가고 있는 이야기를 듣고 화순저널 독자와 화순군민들에게 전한다.<편집자 주>

▲ 학포 양팽손 선생 혈통의 대표적인 유학자 출신 양회일 의병장

항일의병장 양회일 장군의 생가터를 알리는 초라한 표지석

행사 양회일 장군(이하 증조할아버지)은 학포 양팽손 선생의 혈통으로 대표적인 유학자 집안 출신의 의병장입니다.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양회일 장군은 의병들을 모집하여 화순 이양 계당산 증동마을 일원에서 의병들에게 일본군을 대항할 전투교육을 시켰습니다.

▲ ‘쌍산의소’에서 항일투쟁 훈련 지휘한 양회일 장군

항일의병들이 양회일 의병장을 중심으로 전투교육을 받고 준비한 곳이 ‘쌍산의소’입니다. 다른 지역에는 항일의병유적이 대부분 남아 있지 않은 상태인데 쌍산의소는 거의 완벽할 정도로 무기 및 탄약을 공급했던 무기제작소, 유황을 채굴했던 유황굴, 방어시설인 의병성, 의병들이 생활했던 막사터 등이 잘 보존돼 있습니다.

양회일 장군과 증동마을 유지 임노복 의병의 첫 모의 장소, 나중에 의병활동의 본부가 된 임노복 의병의 가옥

무기제작소, 직접 유황을 채굴해 총과 탄환 등 무기를 제작했던 곳

의병들이 생활했던 막사터, 지금은 경계를 알리는 돌무더기들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쌍산항일의병들의 최초의 모의 장소는 증동마을의 유지였던 임노복의 집이었는데, 이후 양회일 장군이 임노복에게 양해를 구해 의병활동 본부로 사용했다고 합니다. 이때 임노복은 전투에서 승리하기 위해 양회일 장군에게 세 가지 조건을 제시했다고 합니다. 첫째 의병으로 활동할 사람, 둘째 무기, 셋째 군량이었습니다. 이에 증조할아버지는 모든 재산을 내놓았고 친척들의 도움까지 받아 꽤 큰 군자금을 마련했습니다.

▲ 부모님의 극심한 반대, 밤을 새워가며 설득해 허락받아내

증조할아버지께서 목숨 걸고 항일의병으로 출정하고자 할 때 부모님의 반대가 극심했습니다. 양회일 장군은 밤을 새워가며 부모님과 형제들을 설득시켰습니다. 새벽녘에야 ‘네 뜻을 못 꺾겠구나’ 하고 허락을 해줬습니다. 증조할아버지는 둘째, 셋째, 넷째 동생들에게 부모님의 봉양을 맡긴 후 나이 차가 많은 막내동생을 데리고 출정했습니다.

증조할아버지는 우리 집안의 10대 종손이셨습니다. 종손 밑으로 딸린 전답이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그것을 다 팔아서 의병들을 먹여 살리며 훈련을 시켰습니다.

▲ 양회일 장군 항일의병 수괴로 15년 징역형 선고받아

1906년 겨울동안 훈련을 거쳐 1907년 3월 능주를 점령하고 화순으로 진격해 관아와 분견소를 습격하면서 승승장구했습니다. 동복을 거쳐 광주를 공격하려다가 화순 너릿재 전투에서 막내동생은 총에 맞아 큰 부상을 입었고 양회일 장군은 붙잡혔습니다. 증조할아버지는 수괴라하여 징역 15년형을 받았고 지도로 유배형을 받았습니다. 이듬해 순종 특사로 석방됐는데 돌아오시는 길에 강진 쪽에서 다시 의병을 모으다가 발각돼 일본 헌병한테 붙잡혀 장흥감옥소에 수감됐습니다.

▲ 감옥에서 모진 고문당하며 식음 전폐하다 7일만에 순직

증조할아버지는 수감된 후 발바닥에 대못을 박는 고문 등 모진 고문을 당하시면서도 일본놈들이 가져다 준 것은 물 한 모금도 먹지 않겠다며 발로 다 차버리고 식음을 전폐하시다가 7일만에 순직하셨습니다. 둘째 증조할아버지께서 시신을 수습하러 갔는데 온몸이 피로 범벅이었다고 했습니다.

의병활동을 했던 분들이 나라에서 자기를 구해준다고 생각해서 했을까요? 아니지 않습니까. 나라가 없으니까, 나라를 뺏기고 나니까 아무것도 아니거든요. 맨날 일본놈들이 시키는 대로 해야 되고 나랏말까지 없애버리려고 하니까 거기에 저항을 한 것입니다.

▲ 풍비박산 난 집안, 고향 떠나 외지로 떠돌아야 했던 조부와 아버지

증조할아버지에게는 아들(할아버지)이 한 명 있었는데, 아버지의 원수를 갚겠다고 일제강점기 때 금강산 등 전국 곳곳을 돌아다니시다가 객사하고 말았습니다. 집안이 풍비박산이 나고 말았습니다. 할아버지에게는 아들이 3명 있었는데, 큰아들이 바로 저희 아버지입니다. 저희 아버지를 생각하면 목이 메입니다.

이곳 쌍봉마을은 대부분 양 씨 성을 가진 씨족집안으로 300여 가구 중 80%가 양 씨였습니다. 그런데 당시 양 씨가 보이기만 해도 모두 다 잡아다가 ‘의병대장 어디 있느냐?’고 고문을 하니까 고생들을 많이 했습니다. 증조할아버지의 큰 뜻을 알지만 생활이 불편해지고 목숨이 위태로워지니 원망을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 원수가 돼버리기도 했습니다.

▲ 집안의 대 잇기 위해 귀향한 60세 아버지, 양회일 장군의 직계 증손으로 태어나

평생을 고향 쌍봉마을에서 사시지 못하고 외지로 떠돌던 아버지를, 집안 어르신들이 대가 끊어질 것을 염려하여 계룡산인가에서 억지로 쌍봉마을로 모셔왔습니다. 아버지 연세 60세 때 제가 양회일 장군의 직계 증손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제 나이 다섯 살 때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말았습니다. 저희 어머니께서 평생 고생을 하셨습니다. 논밭은커녕 집도 없어서 품팔이하시며 자식들을 키웠습니다.

▲ 고생은 했지만 훌륭한 조상이 있다는 긍지 하나로 살아가

초라한 양회일 장군의 생가 대문 앞에서, 집안이 풍비박산 나고 멸문지화를 당했지만 훌륭한 조상을 뒀다는 긍지로 살아가고 있다고 전하고 있다.

의병에 참여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멸문지화를 당했고 후손들은 위험에 처해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독립운동을 한 사람들은 3대가 망한다고 했습니다. 후손들의 삶은 뻔합니다. 저도 1985년 부산에 있는 신발공장에 취직해서 근근이 생계를 유지했습니다. 다들 고생을 했으니까 저의 고생은 고생이랄 것도 없을 것입니다. 고생은 했어도 훌륭한 조상이 있다는 긍지 하나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 일제 치하 벗어난 지 100년도 안 돼 까맣게 잊고 있는 현실이 무서워

독립운동가 후손으로서 바라는 것이 있다면, 일제 치하에서 힘들게 되찾은 나라가 잘되는 것입니다. 불과 78년 전, 일본이 우리나라에서 철수할 때 다시 돌아오겠다고 했습니다. 100년도 채 안 된 일을 까맣게 잊고 있는 현재 우리의 현실이 무서워집니다.

해방된 지 5년만에 민족상잔의 비극인 6·25전쟁이 일어났습니다. 전쟁으로 폐허가 됐는데 의병과 독립군을 챙길 수 있었겠습니까. 이승만 정부가 들어서면서 우리 민족의 단추는 잘못 끼워졌습니다. 그리고 일본 관동군 출신 박정희가 정권을 잡았으니 독립운동을 한 사람들의 삶이 어떠했겠습니까.

▲ 1950년 항일의병활동 기록한 ‘행사실기’ 초간본 발행

다행히 형제의병으로 싸우다가 살아남은 막내 증조할아버지께서 항일의병활동을 ‘역사에 남겨야겠다’는 생각으로 책을 쓰셨습니다. 그 책이 ‘행사실기’입니다. 행사실기는 학술적으로나 역사적으로 우리나라에서 인정하는 책입니다. 1950년대에 초간본이 발행됐고 1953년에 중간본이 발행됐습니다.

▲ 행사실기에 기록된 쌍산의병 33인 서훈 받게 돼

수많은 쌍산의병들이 이름도 없이 묻혀 있다가 2000년도에 들어서 행사실기에 기록된 33분이나마 서훈을 받게 됐습니다. 또한 쌍산의소도 2007년 한말의 의병활동 유적지로 문화재청으로부터 사적지로 지정됐습니다.

▲ 쌍산의소 사적지 취소될까 걱정

안타까운 점은, 어렵게 사적지로 지정된 쌍산의소가 제대로 알려져 있지도 않고 출입도 원활하지 못한 형편이다 보니 사적지가 취소되지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쌍봉마을 주민들이 양회일 장군과 의병들의 숭고한 뜻을 기리고자 쌍산의소를 찾았다.

무기제작소를 안내하는 표지판 앞에서

그래도 다행인 것은 오는 4월 28일, 화순군의 지원을 받아 유족, 출향인사, 이양면번영회, 이장단, 청년회, 이양 지역민들을 중심으로 16년만에 쌍산의소 의병제를 지내게 됐다는 것입니다.

▲ 역사를 잊은 민족은 미래가 없다, 민족의 얼 제대로 세워나가며 지켜야

역사는 반드시 되풀이됩니다. ‘역사를 잊은 민족은 미래가 없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선진국이 되려면 경제적으로 풍족한 나라가 아니라 정신적으로 문화적으로 부자가 돼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민족의 얼을 제대로 세워나가며 지켜야 합니다.

역사는 되풀이 되며, '역사를 잊은 민족은 없다'고 우리 민족의 얼을 제대로 세워나가야 함을 강조해서 전하고 있는 양금열 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