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희 감독, 나의 모든 기술 아낌없이 제자들에게 주고 싶다

인터뷰
정명희 감독, 나의 모든 기술 아낌없이 제자들에게 주고 싶다
배드민턴 세계연맹 명예전당 ‘정명희’ 올릴 때 가장 영예로운 순간
바로셀로나 올림픽 출전 포기, 인생에서 가장 큰 후회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에서 좋은 성적 내 화순군 널리 알렸으면
  • 입력 : 2023. 05.23(화) 16:57
  • 김지유 기자 hsjn2004@naver.com
정명희 화순군청 배드민턴팀 감독, 나의 모든 기술 아낌없이 제자들에게 주고 싶다고 전하고 있다.
이용대 선수를 길러낸 김중수 아시아배드민턴 연맹 회장의 후임으로 2007년 화순군청 배드민턴 감독을 맡아 지난 16년간 헌신적으로 선수들을 가르쳐온 정명희 감독을 화순저널 인터뷰 석에 초대했다.<편집자 주>

▲ 가르치다 보면 욕심 생겨 훈련도 잔소리도 많이 하게 돼

화순군청은 관공서이다 보니까 삼성생명이나 공항공사 등보다 예산이 적을 수밖에 없습니다. 선수들을 스카우트할 때 아무래도 기업들 우선순위로 잘하는 선수들이 빠져나갑니다. 2순위 선수들을 데리고 와 잘 가르쳐서 레벨을 올리고 있습니다.

가르치다 보면 욕심도 생겨 훈련도 많이 시키고 잔소리도 많이 하고 안 좋은 소리도 하게 됩니다. 이런 걸 다 받아들이고 열심히 따라오며 최선을 다하는 선수가 제일 좋습니다. 본인들이 노력을 해줘야지 감독이나 코치의 마음만 갖고는 안되니까요.

▲ 첫 시합 뛰면서 노력한 결과 보이면, 제일 뿌듯한 순간

정말 힘듭니다. 그런데 그 아이들이 진짜 진짜 열심히 노력해서 첫 시합에 나가 뛰면서 그 결과를 보여주면 ‘많이 좋아졌는데! 다음에는 이런 것을 하면 더 좋아지겠네’ 하는 생각이 들면서 굉장한 보람을 느낍니다. 시합에서 질 수도 있지만 제일 뿌듯한 순간입니다. 물론 성적을 내면 더 좋습니다. 운동은 성적으로 말하는 거니까.

계약이 만료되면 다른 팀으로 이적할 때, 선수들이 ‘자기한테 잘해줘서 고맙다’ ‘신경 써주며 손을 안 놓고 잡아주고 끌어주셨기에 운동을 할 수 있었다’며 인사할 때 가슴이 뭉클합니다.

▲ 화순군 알리는 목적에 이바지하도록 최선 다하고 있어

다른 종목도 많은데 화순군에서 쉽지 않은 배드민턴을 키우는 목적은 화순을 알리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되도록 배드민턴이 그 목적에 이바지하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화순을 알리려면 시합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우승을 해야 합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화순이 알려지니까요. ‘대가를 받고 화순군청 실업팀에 왔으니까 그 몫을 해야 한다. 그게 너희들의 숙제다’고 항상 선수들에게 전합니다. 저도 늘 염두하고 있습니다.

▲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에서 좋은 성적 내 화순군 널리 알렸으면

현재 화순군청 배드민턴팀에는 국가대표 선수가 2명 있습니다. 단식에 전주희 선수가 복식에 정나은 선수가 있습니다. 이 두 선수가 올 가을 중국에서 개최되는 아시안게임에 출전합니다. 이 두 선수가 꼭 우승을 거두길 바랍니다.

또한 2024년에 프랑스 파리에서 제33회 하계 올림픽이 개최됩니다. 정나은 선수가 지금 열심히 레이스를 하고 있습니다. 세계 랭킹 8위 안에 들어야만 올림픽에 출전할 수가 있습니다.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이라는 큰 대회를 통해 우리 선수들이 좋은 성적을 내 화순군을 널리 알렸으면 좋겠습니다.

▲ 이용대 선수 키운 김중수 감독 후임으로 화순군청 감독 돼

화순군청 실업팀은 1995년에 창단됐습니다. 저는 2007년부터 화순군청 감독으로 일했습니다. 그 전에는 화순실업고에서 코치로도 일했습니다.

화순군청 배드민턴팀 선수들과 함께
화순군청 배드민턴팀이 창단될 때부터 2007년 제가 화순군청 감독이 되기 전까지는 제 남편인 김중수 감독이 맡았었습니다. 2007년 국가대표팀 감독이 되면서 화순군 감독을 그만두게 됐고 제가 후임으로 감독을 맡아 지금까지 하고 있습니다.

김중수 감독이 이용대 배드민턴 선수를 키웠습니다. 나주시청 배드민턴팀이 해체되면서 1995년 그대로 화순군청으로 옮겨왔는데 김중수 감독도 나주시청 감독이었다가 화순군청 감독이 된 것입니다.

김중수 감독과 저는 1986년도 서울 선수촌에서 같이 선수생활을 했습니다. 그곳에서 만나 연애를 해서 결혼까지 하게 됐습니다.

▲ 바로셀로나 올림픽 출전 포기, 인생에서 가장 큰 후회

1991년 결혼 후 1992년 5월에 저는 선수생활을 접었습니다. 마산 승지중 1학년 때 배드민턴을 시작했는데 15년만에 그만둔 것이죠. 그때가 가장 고민과 내적 갈등이 컸던 시기였습니다. 1992년도에 바로셀로나 올림픽이 있었고 배드민턴 혼합복식이 처음으로 올림픽 종목으로 선정된 것입니다.

올림픽 선수로 나가고 싶은 마음과 결혼했으니 가정에 충실해야 한다는 마음이 충돌했습니다. 결국 가정에 충실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최선이었지만 세월이 흐른 지금은 올림픽처럼 큰 대회에 나가지 못했던 것이 두고두고 후회됩니다.

88올림픽에서는 배드민턴이 시범종목이었습니다. 그때 제가 혼합복식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그러나 말 그대로 시범종목이었지 정식종목이 아니라 경력으로 인정받지 못했으므로 더욱 후회가 됐던 것입니다.

▲ 배드민턴 세계연맹 명예전당에 ‘정명희’ 이름 올릴 때 가장 영예로웠던 순간

선수활동을 하면서 가장 영예로웠던 순간은, 배드민턴 세계연맹 명예전당에 제 이름 ‘정명희’를 올린 순간이었습니다. 선수생활을 하시는 모든 분들은 자기 분야에서 명예전당에 이름을 올리는 것이 가장 명예로운 일입니다. 명예전당에 이름을 올리려면 국가대표로 출전해서 국제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내야 가능합니다.

▲ 저에게 있는 기술 다 뺏어가길

선수들의 얼굴에 힘들고 하기 싫은 마음이 드러날 때가 있습니다. 저도 선수생활 할 때 힘들게 했습니다. 그때는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은 마음도 들고 그랬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나니까 그때 조금만 더 열심히 할 걸, 잘할 걸 하는 후회가 됐습니다.

선수들을 보면서 조금만 더 욕심을 내줬으면, 이 힘든 고비를 잘 넘겨주길, 좀 더 자신감을 가지고 연습했으면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 때가 있습니다. 이런 시간도 몇 년 후면 끝입니다.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이 있듯이 재미있게 하길 바랍니다.

운동 선수로 뛰는 시간 짧습니다. 남들처럼 40대까지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요. 후회되지 않도록 조금만 참고 할 수 있을 때까지 열심히 재미있게 하길 바랍니다. 저에게 있는 기술을 다 뺏어갔으면 좋겠습니다.

▲ 전신운동인 배드민턴 화순군민들께서도 많이 배우고 해보시길

화순군 특히 구복규 군수님이 선수들과 저에게, 배드민턴에 관심을 갖고 신경을 써주시니 매우 감사합니다. 또한 정형찬 체육회장님도 모든 종목의 엘리트 선수들을 만나러 다니시고 생활체육에도 관심을 가져주시고 둘러보며 격려해주시니 화순군의 체육 발전에 큰 도움이 되고 발전이 있을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마지막으로 화순군민들께서도 배드민턴팀을 응원해주시고 관심을 가져주셨기에 이렇게 발전했습니다. 화순군민들께서도 전신운동을 할 수 있는 배드민턴을 더 많이 배우고 직접 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화순군 알리는 목적에 이바지하도록 최선 다하고 있다는 정명희 감독
김지유 기자 hsjn2004@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