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캉스]화순군립운주사문화관 버스 여행기

문화
[촌캉스]화순군립운주사문화관 버스 여행기
김민지 문화평론가의 ‘방방곡곡’
바쁜 삶에서 벗어나 일상에서 찾는 소소한 행복
  • 입력 : 2023. 07.07(금) 16:04
  • 김민지 문화평론가
화순군립운주사문화관 입구 전경
촌캉스는 시골에서 즐기는 휴가를 의미하는 신조어를 의미한다. '촌'과 '바캉스(vacance)'의 합성어다. 매년 소비 동향을 분석해 출간되는 <트렌드 코리아 2023>에 나온다.

비가 많이 내려 하루 미뤘다. 더는 미룰 수 없어 결심이 섰다. 며칠 전 기사로 접했던 곳. 장소는 ‘화순군립운주사문화관’이다. 이동 수단은 군내버스를 타고 가기로 했다.

▲화순읍에서 218-1번 탑승
오랜만에 타는 버스라 낯설었다. 속도도, 높이도, 조금 지나니 이내 적응이 된다. 덜컹거리는 버스를 타며 창문 옆을 내다본다. 그동안 차로 지나며 켜켜이 쌓인 추억이 주마등처럼 지난다. 기억 속으로 많은 추억을 더듬다 보니 벌써 갈아탈 곳이다. 하차해야 한다. 능주 버스터미널에서 중장터 가는 방면 218번 버스로 갈아타야 한다.

▲중장터 가는 방면 218번으로 환승
살짝 열린 창문에서 바람 곁에 머리카락이 휘날린다. 지난번 갔던 능주농협 유리온실도, 정암 조광조 선생 유배지도, 대곡리 고인돌도 정말 아는 만큼 보인다. 버스요금 주고 산 자연의 풍광이랄까. 그렇게 자연에 심취해있을 무렵, 버스 안 손님은 하나둘씩 목적지로 향했다. 나도 마찬가지. 하차하니 저 멀리 목적지가 보인다.

▲관전 포인트. 데크에서 ‘물멍’
‘항일독립운동가비’를 오른쪽으로 두고 터벅터벅 기와 사잇길로 걷다 보면 나오는 데크

비가 내려 땅이 살짝 젖어 있었다. 촉촉한 나무들과 작은 물가에서 흐르는 물소리 ASMR을 즐길 수 있다. 데크 길을 따라 열 걸음 쭉 걷다가 뒤를 돌아보니 화각이 일품이다. ‘물멍’은 물을 보며 멍하게 있는 상태를 말하는 신조어다. 흐르는 물소리에 한 주간 힘들었던 일도 씻겨 보내고, 스트레스도 흘려보내고, 인생무상을 느꼈다. 모든 것이 욕심이었음을 이곳에 오니 이제야 알게 됐다.

▲1층 미디어 아트홀 : 화순 8경과 그리고 목비(木碑)
‘화순 8경’과 백성들을 두루 살피던 화순 현감 홍기천 이야기에 나오는 캐릭터 ‘목비(木碑)’

제1전시실에 왔다. 입구에 들어서자 지금까지의 편견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늘 1이라는 숫자가 익숙한데. 2경인 운주사부터 화면이 보였다. 그 연유가 궁금했다. 2전시실로 오르는 계단을 올라 거기서 내려다보니 1경인 화순적벽의 아름다움이 돋보이도록 작품이 전시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작품을 전시한 큐레이터가 누구인지 궁금함을 가진 채 작품을 감상했다. 찬란한 영상과 함께 음향이 계속됐다. 마치 그곳까지 직접 여행을 떠난 기분이 들었다.

오른쪽 캐릭터 ‘목비(木碑)’는 조선 현종 때 문신인 홍기천의 이야기에 나온다. 화순 현감으로 부임한 그는 큰 가뭄이 들어 비가 내리지 않다가 땔감을 높이 쌓고 마음을 다해 기도를 올렸다. 지성을 정성스레 드렸더니 하늘도 감복했다. 계속되는 비 덕분에 그해는 풍년이 들었다는 설화가 전해진다. 고을 사람들은 그에게 감사한 마음을 담아 공적비를 세우려는데 만류하다가 승낙했다. 하지만 비석 대신 나무로 만들어 달라고 했다. 향교를 중수하다 나무가 부족해지자 자신의 목비를 사용하게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관전 포인트. 화순군립운주사문화관 큐레이터의 해설
“운주사문화관 개관 기념 초대전이 열리면서 구복규 군수님이 지역 작가 발굴에 힘을 실어주셨어요. 1층에 전시된 미디어아트 전시관은 화순이 최초에요. 지방자치단체로는 의미 있는 출발이에요. 지금까지 서울이나 안산, 전주, 광주에서만 전시되었던 작품들을 이곳 화순에서 관람할 기회입니다. 화순 동면 출신인 전현숙 작가와 이기원 작가는 능주에 작업실이 있어요.”

화순군립운주사문화관 큐레이터 공 명 학예사에게 관람 후 질문을 했다. 작가의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전현숙 작가의 작품은 캐릭터와 컬러 크로키가 유명해요. 실제 본인의 모습과 많이 닮아 있어요. '가슴앓이'라는 작품 속 ‘피노키오’는 아들을 상징해요. 다른 작품에 나오는 ‘각시탈’은 결혼 생활의 어려움을, ‘종이학’은 작가의 염원을 뜻해요. ‘모란’은 부귀영화를 상징합니다. 그녀의 작품에서 유독 가슴이 자주 표현되는 것은 아이에게 모유 수유하지 못한 아쉬움을 표현해요. 옆에 있던 반려견도 오랫동안 함께 생활하다가 먼저 하늘나라로 떠나게 되었다고 해요. 한참 후에서야 표정이 밝아지는 시기가 와요. 여자와 남자가 만나 좋아지는 시기가 작품으로 표현된답니다. 한자 여자 여(女)와 사내 남(男)이 만나 좋을 호(好)가 되듯 말이죠.”

“이기원 작가님의 작품은 2023년 현재 작업한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어요. ‘고인돌’을 소재로 하여 평면으로 된 작품을 선보였어요. 삶 속에서 작품이 나왔어요. 일상의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며 작품으로 보여주지요. 모든 작품에서 인간 사랑과 철학적 고민이 녹아있어요. '효산리 고인돌'과 '마산리 고인돌'에는 꽃들이 있어요. 작품 속 꽃은 삶을 뜻합니다. 생사일여(生事一如)는 삶과 죽음이 둘이 아니라는 뜻으로 불교의 생사관(生死觀)을 뜻해요. 이외에도 '돌들아 소리쳐라', '자목련과 달바위', '백목련과 괴바위', '삶과 죽음 사이'. '세상을 바라보다', '꿈의 결실'이라는 작품을 감상할 수 있어요.”

▲관전 포인트. 운주사문화관 속 ‘서가’

화순에 이런 곳이 있다니. SNS 감성이 물씬 풍기는 곳이다. 좋은 곳을 보면 꼭 생각나는 친구들이 있다. 이곳이 주는 장소의 미학은 특별했다. 그동안 봐왔던 책들이 아닌 요즘 관심 가진 책들이 많아 한참 여기서 시간을 보냈다. 꼭 책들이 내 손길을 기다리는 것만 같았다. 창밖에 시선이 머문다. 잠시 주는 여유가 행복을 선물해 주었기에. 목적지를 향해 빨리 달리는 차를 보다가 문득 나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알았다. 나도 저들처럼 속도에만 머물렀다는 것을. 자신을 보지 못한 채.

힘들었던 일상에서 잠시 나만의 오아시스가 필요한 이들에게 권한다.
전현숙 작가와 이기원 작가의 ‘경계의 아리아’를.


※김민지 문화평론가의 글은 네이버 블로그(mjmisskorea) ‘애정이 넘치는 민지씨’에서도 볼 수 있다. 방방곡곡은 다양한 책과 문화 속으로 떠나는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다.
김민지 문화평론가 hsjn2004@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