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남진 수목원, 바위에 그린 그림. 폭우로 산책로가 물길이다.

남도에 작년엔 비가 귀했다. 금년엔 비가 헤프다. 결코 헤어지지 않으리라 다짐이라도 하듯 내리고 또 내리고 쉬이 떠나려 하지 않는다. 처음엔 만난 지 며칠 안 된 연인 같아서 설레는 마음에 빗속을 하염없이 걷기도 했다.

빗속에서 일상은 적당한 긴장감이 있어 좋았다. 새침데기 애인 같달까. 아침에 들고 나선 우산이 귀찮은 때도 있었다. 가끔은 빗줄기 사이로 햇살도 지나갔다. 사람의 마음이란 게 참...오래 만나다 보니 비와 나 사이는 한 삼십 년쯤 된 부부를 닮아갔다.

비에 몸도 마음도 지쳐갔다. 우울한 소식만 건너왔다. 이럴 땐 위로가 필요하다. 번잡하지 않게 그렇다고 초라하지 않게. ‘남도 한바퀴’만한 것도 없겠다 싶다.

남도한바퀴는 전라남도와 금호고속이 협력한 여행 상품이다.

‘남도 한바퀴’는 전남 관광지를 순환하는 버스 여행이다. 2014년 전라남도와 금호고속이 협력해 7개 코스로 시작했는데 금년 4월, 26개 코스로 늘었다. 21개 ‘여행코스’와 5개의 ‘전통 5일 시장 코스’다.

요금은 9,900원에서 24,900원까지 운행 거리에 따라 노선 별로 다르다. 식비, 입장료, 숙박비, 여행자 보험 등 기타 비용은 개별 부담이다. 모든 일정에 문화관광해설사가 동행한다.

화순을 경유하는 노선은 두 개다. 만연사 오감길을 지나는 '피톤치드 가득한; 화순·장흥풍경여행'과 쌍봉사에서 시작하는 '남해 오션뷰; 화순·보성 드라이브 여행'이다.

출발지는 광주버스터미널과 광주송정역이다. 다른 지역 관광객을 위한 배려다. 서울에서 출발한다면 센텀시티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3시간 20분이면 도착한다. 수서역에서 SRT를, 용산역에서 KTX를 이용해도 편리하다.

매일 출발하지만 요일 별로, 5일장날 따라 코스가 달라진다. 예매는 출발 하루 전까지 전화(062-360-8502)나 인터넷 인터넷 홈페이지(kumhoaround.com)를 이용하면 된다. 일찍 매진되기도 한다.

차창 너머 바다가 비에 흐릿하다.

이달 7일 금요일, 일반 코스로 3개가 출발했다. '보랏빛 세상; 신안 퍼플섬 여행', '정(正) 남쪽에는 정남진; 나주·장흥 바다 품은 여행', '자연 풍경 만끽; 함평·영광 힐링 여행', 전통 5일 시장 코스는 '해남 땅끝과 유일 난대숲의 만남; 해남·완도 신바람 여행'이었다.

‘신안 퍼플섬 여행’을 다녀오기로 했다. 일반버스 12,900원에 광주버스터미널에서 오전 8시 50분 출발이었다.

새벽녘 비가 퍼부었다. 빗길 정체가 심했다. 딱 1분 늦었다. 차는 떠났다.

“'나주·장흥 바다 품은 여행'이 10분 후에 출발합니다. 비 때문인지 좌석이 여유가 있어요. 이곳 여행도 바다를 볼 수 있습니다. 24,900원 요금으로 우등버스로 이동하니 예약하셨던 여행보다 편안하실 겁니다.”

안내하는 아가씨의 미소가 햇살을 닮았다.

나주와 장흥은 다녀온 곳이긴 한데...여행도 공부와 닮아서 반복하면 이해가 깊고 넓어진다. 더욱이 선택의 여지도 없다. 복습 차원에서 한 번 더 다녀오지. 버스에 올랐다. 김진영 기사 인도로 6명이 널찍하게 자리 잡고 출발했다. 광주송정역에서 3명이 탑승했다.

불회사 대웅전

10시 나주 불회사(佛會寺)에 도착했다. 출발 전 한두 방울 하던 것이 제법 비답게 내린다. 이교숙 해설사가 기다렸다. 지금은 모일 회(會)를 써서 불회사이지만, 처음엔 호랑이 호(虎)를 써서 ‘불호사(佛虎寺)’였다고 했다. 창건한 이는 마라난타이고 백제에 처음 불교를 전하고 불갑사를 세웠다던 바로 그 승려다.

장흥 5일장, 2일과 7일이 장날이다.

점심시간에 맞추어 ‘정남진장흥토요시장’에 도착했다. 이혜순 해설사가 기다렸다. 마침 장흥 5일 장날(2일·7일)이다. 비 때문인지 사는 사람보다 파는 사람이 더 많다. 토요장날에 볼거리가 많다며 여행 택일을 한다면 2일과 7일, 토요일과 겹치는 날이 더 좋다고 한다.

이 동네 대표 음식은 누가 뭐래도 장흥 삼합이다. 쇠고기와 키조개와 표고버섯이 동행하는. 장흥 인구가 3만 정도라고 한다. 한우 사육두수는 5만 정도 되고. 처음엔 거세 수소로 싼 가격이 매력이었다. 지금은 고급 암소 한우로 품질이 장점이라고 짧지만 인상 깊게 설명했다. 소머리 국밥을 먹었다. 반찬은 '칠게'만 추가했다.

탐진강, 멀리 장흥읍내가 보인다. 탐진강에서는 매년 7월말에서 8월 초 사이에 물축제가 열린다.

빗줄기는 더 굵어졌는데 읍내를 흐르는 탐진강 물이 더 맑아지고 불겠다. 이달 말부터 다음 달 초까지 열리는 물 축제는 더 풍성해질 것이다. 버스는 바다로 향했고 한승원 산책로를 지났다. 수문해수욕장 백사장 너머 바다가 비에 젖고 있었다. 정남진대교를 건넜다.

소등섬 들어가는 길. 만조로 길이 잠겼다.

소등섬에 도착했다. 비가 많으니 바닷물도 넘친다. 만조다. 섬으로 갈 수 있는 길이 잠겼다. 특히 일출이 아름다워 장흥이 자랑하는 관광지라는데 사진 몇 장 찍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랬다. 정남진전망대로 향했다. 빗줄기는 더 굵어졌다. 앞이 보이지 않는다. 버스가 길을 잘못 들어서 되돌아왔다.

정남진 전망대, 장흥을 이루는 10개 읍면에 맞추어 10층이다.

전망대 입장료 2,000원인데 남도 한바퀴 이용자는 절반이란다. 65세 이상은 당연히 무료고.

“서울 경복궁 광화문에서 남쪽이라 하여 정남진입니다. 황포 돛대와 둥근 태양을 상징하는 형태의 건물로 10층입니다. 장흥이 10개 읍면으로 이루어져서 있어서 그래요. 9층과 10층은 전망대, 8층은 북카페, 7층은 문학영화관, 층별로 전시가 다르답니다. 올라가실 때는 엘리베이터로 내려가실 때는 계단을 이용하십시오.”

해설사의 설명이다. 맑은 날은 소록도, 고금도가 눈 앞처럼 선명하다지만, 유리에 흐르는 빗물만 가득하다. 맑은 날 또 와야 하나...

정남진 수목원, 입구 카페다. 글램핑 시설이 잘 되어있다.

마지막 행선지는 ‘정남진 수목원’이다. 천관산 남쪽 기슭 선학마을 가는 길목에 있다. 개인 소유로 입장료는 없다. 글램핑(몸만 가서 즐길 수 캠핑) 운영이 주요 사업이라 했다. 폭우다. 수목원 산책길이 물로 덮였다. 발목까지 잠긴 탓에 귀가를 서둘렀다.

장흥을 벗어나면서 빗줄기가 가늘어진다. 광주에 도착하니 하늘이 쨍하다. 꿈길 같은 여행길이었다. 축축하게 답답한 날 내게 주는 위로였다.

쿰파니스 화순저널 시민기자
* 이글은 <오마이뉴스>에도 실린다. 또한 네이버 블로그(cumpanis) '쿰파니스 맛담멋담'에서도 볼 수 있다.
* '쿰파니스(cumpanis)'는 '함께 빵을 먹다'라는 뜻의 라틴어로 '반려(companion)'의 어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