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안개에 잠긴 숲은 현실이 아니라, 기억과 감정의 심연에서 피어난 고요한 자아의 공간이다. 이 숲은 외부 세계로부터 단절된, 말과 생각을 벗어난 후 마주하는 내면의 중심을 상징한다.

실개울은 감정의 흐름이자 의식의 길목이다. 모든 소리가 수면 아래 잠긴 듯한 정적은, 더 깊은 몰입으로 이끈다. 이 흐름을 따라 도달하는 곳에 바위 위의 한 송이 흰 꽃이 피어 있다. 홀로 있으나 고립되지 않은 이 꽃은, 시련 속에서도 피어난 순결한 자아, 존재의 정수를 상징한다.

가사 없는 선율은 언어 이전의 감정으로 숲의 심장을 울리며 하늘은 은하수로 응답한다. 별빛은 인간 존재의 미미함을 일깨우는 동시에, 실존의 존엄성을 환기시키며 명상의 절정 상태를 드러낸다.

이 풍경은 누군가의 상상이 아니라, 내면에 오랫동안 잠들어 있던 기억이다. 리얼리즘의 세밀함 안에 추상의 감성이 숨겨져 있고, 감각의 질서 속에 영혼의 떨림이 깃들어 있다.

숲속의 꽃 한송이는 단지 자연을 재현한 풍경이 아니라, 존재의 본질을 인식하는 시각적 체험이다. 고요하지만 결코 정지되지 않은 이 숲에서, 우리는 오래된 자아의 숨결과 마주한다.

한광용
화순저널 논설위원
전남대학교치과병원 아트스페이스갤러리 디렉터
화순군립요양병원 서암갤러리 디렉터


일반인들이 볼 수 없는 작가명이 암호화되어 그림 속에 삽입되었음을 알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