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의 유래

칼럼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의 유래
호랑이 풍자 그림·이야기, 상하 귀천 없던 행복한 시절 그리워하는 실낙원(失樂園) 같은 것
양반들 담뱃대에 금과 은박무늬까지 단장해 유세 부림
평민들 오직 소설, 풍속화(민화), 판소리, 광대극 등으로 고통 달래고 풍자
  • 입력 : 2023. 04.01(토) 08:02
  • 화순저널
어린 시절 옛이야기를 들려주시던 어른들께서는 으레 ‘옛날 옛날 호랑이가 담배 피던 시절에’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나는 정말로 호랑이가 담배를 피었을까? 하는 의문이 항상 뇌리 속에 맴돌았지만 그래도 이야기를 듣고 싶은 마음에서 그냥 참고 넘어가야 했다.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에 관한 구전설화들이 몇 가지 있는데 그중 한 가지는 호랑이가 된 효자(효자 호랑이)에 관한 내용이 있다.

<옛날 한 고을에 김서방과 이서방이란 친구가 한 고을에서 살았는데 둘은 어릴 적부터 글 공부를 같이 하고 멱도 함께 감던 깨복쟁이(전라도방언) 친구였다. 장성하여 과거시험도 함께 치뤘으나 이서방만 합격을 했고 김서방은 낙방하여 고향에 내려와 병든 노모를 모시고 힘들게 살아가야 했다.

하루는 김서방 집에 지나가던 스님이 합장을 하며 시주를 청했다. 넉넉지 못한 살림에도 쌀을 나눠줬더니 고마워하며 김서방의 귀에 대고 스님은 날마다 100일간 개 한 마리씩을 잡아 푹 고아드리면 노모의 병이 나을 것이라고 하고 부적 2장을 건네줬다.

1장은 호랑이로 변하게 하고 다른 1장은 사람으로 다시 돌아오게 하는 것이었다. 대신에 꼭 명심할 것은 사람으로 돌아올 때 절대로 보는 사람이 없어야 한다고 신신당부를 하고 갔다.

그런데 이런 사실을 전혀 모르는 아내가 남은 부적 1장을 불태워 버렸다. 김서방은 사람으로 돌아올 수 없게 되자 화가 나서 아내를 마당에 내던져 죽였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노모도 놀라서 죽고 말았다. 그 후 배고픈 호랑이 김서방은 홀로 산속에서 살며 사람들을 잡아먹기 시작했다. 하루는 새로 고을에 부임하기 위해 산을 넘어오던 사또마저 잡아먹으려는데 자세히 보니 옛 친구인 이서방이었다.

이서방 사또는 친구의 전후 사정 이야기를 다 듣고 난 후에 짠한 마을에서 푸짐한 식사를 대접하였다. 식사를 마친 호랑이 김서방은 다정하게 접대해준 이사또에게 “여보게 나 담배 하나만 주게~”하여 그 뒤로 호랑이가 담배를 핀다>는 말이 나왔다는 황당한 내용이다.

그런가 하면 여러 신화와 전설을 다룬 <한국 구비문학의 세계>에 실린 재미있는 내용도 있다.

<옛날에 한 남자가 술에 취해 낮잠이 들었는데 호랑이가 지나가다가 ‘내 밥이 저기 있구나~’하고 다가갔다. 그러나 남자에게서 이상한 쾌쾌한 냄새가 진동하여 냉큼 잡아먹지 못하고 냄새만 맡고 있었다. 이상한 낌새에 잠에서 깬 술꾼이 슬그머니 눈을 떠보니 웬걸? 호랑이가 자신의 머리맡에 앉아서 코로 냄새를 맡고 있잖은가~?

그는 깜짝 놀랐으나 긴 담뱃대를 호랑이 콧구멍에 확 쑤셔 넣었다. 갑자기 당한 호랑이는 놀라 도망을 쳤고 산에 나무하러 왔던 나무꾼이 호랑이의 모습을 보고 “산에서 호랑이가 담뱃대를 물고 다니더라”는 말 소문을 퍼뜨렸다.> 그 후로 호랑이가 담배 피던 때라는 말이 나왔다는 우스운 내용이다.

이 두 이야기는 호랑이가 용맹스럽기도 하지만 호환(虎患)이 두렵다고 숙명으로 여겼던 백성들의 불안감을 해소시켜주는 만담(漫談)에 해당될 수도 있다.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의 유래를 역사적으로 고려 말에서 조선 초기에 백성들의 삶과 자연생태환경이 크게 변화된 시기로 보는 학자들도 있다.

그 이유는 태조 9년에 시행된 산림천택여미지공(山林川澤輿尾供之 : 산림과 하천의 이익을 백성과 함께 누린다는 토지정책) 이후부터 좋은 이름으로 시작됐으나 목재. 소금. 선박건조 등 나라에서 관리하던 것이 갈수록 남벌과 화전경작으로 무력화됐고 맹수사냥까지 허용되면서 범과 표범이 17세기 초에는 매년 1천 마리 이상이 사라졌다. 이런 생태환경의 변화가 오기 전의 상태를 ‘옛날 호랑이 시절’이라고 했을 수도 있다.

상식적으로 호랑이는 원래 불(火)을 무서워하며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호랑이가 긴 담뱃대(장죽=長竹)을 입에 물고 있고 토끼가 담뱃대를 받치고 있는 풍속화가 왜 나왔을까?

이는 조선 초기에 담배가 처음 우리나라에 전해졌을 시기에는 양반과 평민, 임금과 신하 상하 신분 구별 없이 담배를 함께 피우고 즐거웠던 시절에 대한 그리움의 표현으로 볼 수 있고 담배 피운 연기가 하늘로 피어 올라가듯이 자신의 신분도 높은 자리에 앉은 임금 같은 기분에 휩싸였을 수도 있다.

그러나 임진왜란 전후에 처음 담배가 들어와서 1600년초 광해군 때 최초로 재배도 되었으나 임금 앞에서 함부로 피워대는 신하들의 담배연기와 냄새를 싫어하여 자신 앞에서는 피우지 못하도록 금연령을 내렸을 정도였다.

더구나 17세기에 들어온 주자학(성리학)으로 인하여 담배 예절과 처벌이 강화되었고 담배 유해성의 찬반론까지 벌어졌다.

어디 그뿐인가? 양반과 평민의 담뱃대 길이도 달라져서 양반은 긴 담뱃대(장죽:長竹) 평민은 짧은 담뱃대(단죽:短竹=곰방대)를 써야 했다. 양반의 담뱃대 길이는 무려 2~3m에 이르는 것도 있었고 하인들이 끝에 불을 붙여 줘야 될 정도였다.

주자학은 도덕과 예절을 강조하면서 이념독재로 백성을 압박하는 통제수단으로 이용되었고 정작 양반들은 당파 싸움이란 패단을 낳았다. 재산이 많은 양반들은 담뱃대에 금과 은박무늬까지 단장을 하여 여유 있고 폼나는 자신을 내세우고 자랑까지 하였다.

불평등하고 불편한 신분사회에 대한 불만이였던 평민들은 오직 소설, 풍속와(민화), 판소리와 광대극 등으로 고통을 달래고 풍자 비판하였다. 예전의 이상사회를 그리워하며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이란 말이 생겨났다고 봐야 한다. 호랑이를 빌어 풍자했던 그림이나 이야기들은 상하 귀천 없던 행복한 시절을 그리워하는 실낙원(失樂園)과도 같다.
문장주 문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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