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하는 지식인, '민봉(民峯)' 박현채 |2022. 03.25

후진에 남긴 ‘민봉학’의 과제들 박현채의 오랜 지우였던 언론인 김중배는 다음과 같이 고인을 기린다. 자기는 역사의 고비에서 자기가 나아가고자 하는 바, 또는 역사의 진보가 이렇게 되어야 한다고 믿는 바에 대해서는 피해서는 안 된다, 항상 맞서서 이것을 이겨내야 된다고…

왜 다시 민족경제론인가? |2022. 03.18

사후의 추모에서 이어진 기념사업들 박현채가 생사의 고비를 넘나들고 있을 때 동료와 후학들이 회갑기념논문집 두 권을 상재했다. 정윤형이 중심이 된 『민족경제론과 한국경제』는 창작과비평사에서, 안병직이 주도한 『한국경제: 쟁점과 전망』은 지식산업사에서 펴냈다. 각각의 논문…

1995년 8월, 긴 투병 생활 끝에 눈을 감다 |2022. 03.11

치열하게 살아온 민족경제학자, 세상을 떠나다 박현채의 와병(臥病)은 지식인 사회에 큰 충격이었다. 무엇보다 민주주의와 평화통일을 추구해온 진보적 지식인들에게 가슴 아픈 소식이었다. 그처럼 강건하고 의욕적이었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쓰러지다니, 믿기지 않았다. 처음 쓰러져 서울…

1993년 8월, 뇌졸중으로 쓰러지다 |2022. 03.04

자서전 집필, 그의 말년을 갉아먹다 야생초를 실내에 옮겨 심으면 본래의 싱싱함을 잃는다. 바다의 물고기를 수족관에 넣어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야생마와 같았던 박현채는 제도권에 잘 적응하면서 활기찬 광주 생활을 이어갔다. 지리산과 백아산, 무등산을 가끔 등반하고 망월동 5&…

사회주의 국가 중국을 첫 해외 방문지로 삼다 |2022. 02.25

해외 여행길 올라 중국 견문록 쓰기도 박현채는 대학교수로 제도권에 편입하면서 뒤늦게나마 다소 안정되고 평탄한 삶을 살았다. 민주화가 진척되면서 진드기처럼 따라붙던 검은 그림자가 사라지는가 하면, 형사가 찾아와 동향 보고서에 날인하라는 압박도 줄어들었다. 중고였지만 자가용…

『청년을 위한 한국 현대사』를 편찬하다 |2022. 02.18

민족민주운동을 바탕으로 한 한국 현대사 집필 박현채는 1992년 4월 자신의 이름으로 도서출판 소나무에서 『청년을 위한 한국 현대사』를 편찬했다. 리영희, 송건호, 강만길 등이 한국 근현대사와 관련한 각종 저술을 쏟아내고 있을 때, 박현채도 소장 연구가들을 동원하여 민족주의적&…

한국사회과학연구소 공동이사장으로 취임하다 |2022. 02.11

글쓰기에 대한 한결같은 열정을 보이며 박현채는 1989년에도 일간지와 대학 신문 기고 등을 포함하여 60여 편의 글을 썼다. 물론 학술 논문도 적지 않았다. 무크지에도 여전히 관여하고 있었다. 한마당 출판사에서 1989년 2월에 창간호를 낸 『사상운동』에는 좌담자로 참여했다. 「사회…

학생들이 숭배하는 조선대 교수, 박현채 |2022. 02.04

조선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로 취임하다 박현채는 1988년 정윤형 등과 한국사회연구소를 설립하고 이사로 취임했다. 한국사회연구소는 추상적인 공리공론을 지양하고 구체적 분석과 정책 대안을 만들어내는 것을 목적으로 대학원 석사 과정 이상의 연구자 100여 명과 교수 30여 명으로 구성되…

박현채, 소설 속 조원제로 '복원'되기까지 |2022. 01.28

줄탁동시, 박현채와 조정래의 만남 박현채가 단재상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말대로 ‘역사적 상황의 진전’ 때문이었다. 전두환의 폭압 통치에 대한 시민의 저항이 증폭되면서 1987년 한국 사회는 거대한 용광로처럼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6월항쟁의 전야였다. 이 무렵 조정…

제2회 단재학술상을 수상하다 |2022. 01.21

보상 바라지 않는 삶을 생활신조 삼아 박현채는 『민족경제론』으로 제2회 단재학술상을 수상한다. 한길사가 주관한 것으로, 단재 신채호 선생을 기리는 상이다. 이해는 단재가 뤼순〔旅順〕 감옥에서 옥사한 지 60년이 되는 해였다. 친일파를 기리는 각종 상과 장학회, 기념관은 많아도…

민족 해방과 민주주의 혁명을 주창하다 |2022. 01.14

분단에서 농어촌 문제까지, 시대의 화두를 아우르며 한길사는 1988년 9월 ‘사상의 대중화를 위하여’라는 구호를 내걸고 월간지 『사회와 사상』을 창간했다. 박현채는 리영희⋅강만길⋅김진균⋅임헌영과 함께 편집위원으로 위축되었다. 한길사는 잡지 창간 기념행사로 …

대표작 「분단 시대의 국가와 민족 문제」 평론을 집필하다 |2022. 01.07

사유의 영역과 폭이 넓어진 ‘논설의 생산 공장’ 1987년의 한국 사회에는 군부독재를 종식시키려는 거대한 변혁의 물결이 요동치고 있었다. 마침내 노태우는 국민들의 대통령 직선제 개헌 요구를 받아들이면서 6⋅29선언을 발표했다. 7월부터 노동자 대투쟁이 시작되었는데, 8~9월…

1980년대 박현채의 동향 |2021. 12.31

지식인들이 산행 모임 ‘거시기 산악회’ 참여 박현채는 1982년부터 유신 및 5공 체제에서 핍박받은 일군의 지식인들과 함께 ‘거시기 산악회’에 참여하여 정기적으로 산행을 했다. 산행은 건강을 유지하기 위한 운동이자 뜻 맞는 동지들과 회포를 푸는 자리이기도 했다. 이돈명⋅…

고고지성(呱呱之聲) 울리며 쏟아져 나온 무크지와 계간지 |2021. 12.24

저항적 지식인들, 출판계로 몰려들다 1987년의 6월항쟁은 한국의 정치 지형뿐만 아니라 지식인을 비롯한 국민들의 의식에도 큰 변화를 가져왔다. 사회적인 분위기를 살펴보면, 4월혁명 이래 축적되어온 민주화에 대한 열망은 광주항쟁을 거치면서 더욱 확산되었고 부분적으로는 격렬함을…

민족문학 정립에 많은 영향을 끼치다 |2021. 12.17

고은, 리영희 등 지식인⋅문인들과 막역한 교우 ‘1980년대는 어떤 의미에서 박현채와 함께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고 평가한 시인 고은(高銀, 1933~)은, 박현채의 「문학과 경제」를 읽고 그를 민족문학작가회의 평론분과 회원으로 가입시켰다. 경제학자가 민족문학작가회의 정…

'한길역사강좌'의 첫 연사로 초청되어 강연하다 |2021. 12.10

‘한길역사강좌’의 인기 강사로 자리매김하다 도서출판 한길사는 5공 체계에서 여러 책들이 판매 금지 처분을 당하자, 1985년 가을에 ‘한길역사광좌’를 개설했다. 주로 자사의 저자나 비판적 지식인들을 불러 강좌를 연 후 그 내용을 책으로 펴냈다. 박현채는 ‘한길역사강좌’의 …

'민중', 박현채의 자아이자 사상이고 이념이자 이상 |2021. 12.03

민중문학으로 관심을 확장시키다 1980년대 중반을 전후하여 야당, 학생, 지식인, 노동자들의 저항이 격화되면서 전두환 정권은 점차 수세에 몰리기 시작했다. 쿠데타와 광주 학살의 태생적 범죄를 안고 태어난 전두환의 5공 정권은 시민들의 줄기찬 저항을 폭압적으로 다스렸지만, 그때마다…

우리의 역사 민족 그 자체, 지리산 |2021. 11.26

민족의 한이 서린 지리산을 답사하다 한길사는 1984년 봄부터 『오늘의 책』이라는 교양 계간지를 발행하면서, 자사 간행물에 대한 홍보 및 저자들과의 연대에 나섰다. 박현채는 여기에도 몇 편의 글을 썼다. 1986년 여름에 발간된 제10호에 그는 「지리산의 민족사적 위치」를 기고했…

1980년대, 여러 무크지에 논문 싣다 |2021. 11.19

무크지의 시대, 단골 필자로 등장하다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출신 김언호는 “우리 시대의 삶과 사상의 구조를 밝히고 이 땅의 역사적 현실을 해석하는 공개된 자리”를 만들겠다는 사명을 내걸며 『한국사회연구』를 창간했다. 한길사에서 1983년 여름부터 펴낸 이 무크지는 …

공동체 '유토피아'를 꿈꾸다 |2021. 11.12

유토피아를 꿈꾸며, 공동체주의를 향하여 민주화운동가 출신인 김도연은 1983년 자신이 세운 출판사 공동체에서 “분단 극복의 문화운동”을 제창하며 무크지 『공동체 문화』를 창간했다. 그는 ‘공동체 문화’라는 말이 제3세계 실천적 민중문화운동의 본질을 나타내는 개념이라고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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