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의 파면 선고로 탄핵 정국이 마무리되면서 비로소 봄이 왔다.

그 과정에서 가장 큰 관심을 받은 이가 문형배 전 헌법재판소 소장 권한대행일 것이다. 또한 그가 걸어온 길, 그의 말 등이 집중 조명되면서 문형배 헌법재판관에게 장학금을 주어 학업을 이어갈 수 있게 도왔던 김장하 어르신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한약방을 운영하여 번 돈으로 지역의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고, 학교를 설립하고, 지역 문화를 지키고 가꾸는 일을 지원했던 어른 김장하. 그분이 묵묵히 뿌려온 씨앗이 나라가 절체절명의 고비를 맞이한 순간에 큰 역할을 해낸 사실은 말로 다할 수 없는 감격을 자아낸다.

그런데, 화순에도 김장하 어르신과 같은 뜻을 품고 실천해 오신 분이 계셨다. 퇴직금을 밑천 삼아 화강문화재단이라는 장학재단을 설립하신 화강 홍명재 어른. 재단이 설립된 지 30년이나 되었다는데 나는 화순에 그런 분이 계시다는 걸 전혀 몰랐다. 그러다가 둘째 아이가 화강문화재단에서 주는 장학금을 받게 되어 수여식에 다녀오면서 그 분의 존재와 재단에서 하는 여러 뜻깊은 사업들에 대해 알게 되었다.

마침 그날은 어르신이 돌아가신 지 1주기 되는 날에 맞춰 추모식을 겸한 자리였다. 덕분에 자녀분들의 진솔한 이야기까지 겸해서 들을 수 있었는데, 홍명재 어르신은 돌아가셨지만 자녀분들이 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나눔의 삶을 적극적으로 이어나가고 있다는 게 더욱 큰 감동으로 다가왔다. 또한 장학금을 받고 자란 인재들이 그 자리의 스텝으로, 공연자로, 참여하는 것을 보면서 누군가에게 빚진 마음은 반드시 선순환의 흐름으로 이어진다는 점을 확인하게 되기도 했다.

놀라웠다. 요즘은 너나 할 것 없이 자기 자식에게 더 많은 재산을 물려주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는 시대가 아닌가. 내 가족, 내 재산, 내 땅… 자기 한 몸을 넘어서지 못하는 관점에 갇혀 소유와 축적이 삶의 본질인 양 착각에 빠져 있기도 하다. 그런 와중에 ‘承統養英승통양영(영재를 양성하는 일을 전통으로 이어가라)’이라는 귀한 뜻을 유산으로 남기는 사례를 보니, 내 안에도 큰 화두가 하나 생겨났다. 나는 아이들에게 무엇을 물려줄 수 있을까? 무엇을 물려주어야 할까?

거액의 재산과 같은 유형의 자산을 남겼을 때 자식은 잘살 수 있다. 하지만 잘 살지는 못할 가능성이 높다. 잘사는 것과 잘 사는 것은 띄어쓰기 하나 차이로 삶에 대한 태도와 방향성이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이다.

잘살기 위해서는 혼자서 다 거머쥐어야 하지만 잘 살기 위해서는 나누어야 하고, 잘살기 위해서는 경쟁해야 하지만 잘 살기 위해서는 협력해야 한다. 잘살기 위해서는 남들처럼 살면 되지만, 잘 살기 위해서는 남다르게 살아야 한다. 어찌 보면 자식을 잘살게 해주는 것보다 잘 살게 해주는 게 훨씬 더 어려운 일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훌륭한 어른들이 앞서 닦아놓은, 잘 사는 길을 좇고 싶다. 배워서 남 주고, 이웃의 어려움을 살피고, 지역의 문화를 돌보고, 생명을 귀하게 여길 줄 아는… 그래서 잘 산다는 게 무언지 알려줄 수 있는 좋은 본보기가 되는 삶, 그런 삶을 유산으로 남겨주고 싶다.

정청라
이양면의 귀농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