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맹수 전 총장이 이끌고 있는 동학 인문강좌

동학은 슬픈 패배의 역사가 아니다. 일본군과 관군에 맞서 우금치를 넘지 못했지만 조선의 가짜 민본주의를 해체했다. 사람이 사람답게 존중받는 개벽의 신 선언을 만천하에 알려 인간 존엄의 시대를 열었다.

동학은 업신여김당하던 어린이와 제대로 대우받지 못하던 여성을 제자리로 바로 세우고, 천대받던 노비들과 폭정을 저지른 양반들조차도 모두 평등한 사람으로 대접해야 한다고 외쳤다. 그 외침은 사람이 사람을 차별하지 않고 모든 만인이 곧 하늘처럼 존중받아야 한다는 동학 정신의 발현이었다.

동학이 다시 일어나고 있다. 거짓과 반칙이 세상을 지배하고, 혐오와 대립을 조장하는 21세기 죽은 대한민국을 살아있는 동학이 깨워 일으키고 있다. 영원히 산 동학 정신의 현현이다. 구한말 궁을부적의 힘으로 한의 민초들의 분노를 모아낸 것처럼 시민들의 답답한 시야를 열어주고 희망의 손길을 모아준 것이다.

자주 인용하는 “사람이 곧 하늘이다”는 수운 최제우선생께서 던진 대선언이다. 일제와 맞선 민족 대표 손병희선생에 의해 다시 인내천(人乃天)으로 강조되었고 화순 사람들은 이를 오늘에 맞게 해체하고 오늘에 어울리게 재구성한 것이다.

화순의 공부모임은 더 낮게 더 구체적으로 담아야 할 과제들을 안고 풀어갈 것이다. 최제우의 생명 모심의 시천주(侍天主)와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불연기연(不然其然)의 논리, 최시형의 사람 섬기기를 하늘처럼 하는 사인여천(事人如天)과 조상의 기운을 내 몸에 모신 제사법인 향아설위(向我設位) 등 동학의 사상적 뿌리가 정착된 지점부터 시작하고 있다. 이는 양극화를 넘어 차별이 해체되는, 가진 사람이든 못 가진 사람이든 밥을 함께 나눠먹는 일[有無相資]로 거듭날 것이다.

우주와 인간, 생명의 모심과 살림, 신성함과 평범한 삶을 서로 보듬어 안은 채 오늘의 유무상자로 거듭나도록 과거의 정신을 탐구하고 훈습시키고자 동학을 공부한 것이다. 이는 단순한 선언적 명제가 아니라, 인간과 세계의 공존을 사유하는 깊은 통찰이다. 이 생명적 성찰은 화순에만 머물지 않고 한국인의 통찰적 사고를 이끄는 K사상의 전지구적 확장을 모색하는 중이다.

화순사람들이 동학을 공부한다는 건 단순한 역사적 사실을 익히는 학습이 아니다. ‘생명적 개벽으로 새 시대를 여는 사람이 한울님이다’라는 말의 무게를 다시 되새기며, 여성이 주도하는 개벽의 세상과 생명적 존엄을 모시면서 오늘의 혼란을 뿌리째 성찰하려는 시도다. 더구나 화순은 동학의 역사와 직결된 땅이다. 비봉산자락을 넘고, 보성강을 따라 행군했던 동학군의 자취가 여전히 스며 있는 곳. 그 땅에서 다시 깨어나는 민중의 정신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가장 이상적인 공동체는 가진 자와 없는 자가 상호존중되고 질서는 있되 상하와 차별의 갈등은 사라지는 사회다. 똑같지 않은 모두가 존중되는 사람 사는 세상이 동학의 세상이고 화순의 세상이다.

우리는 여전히 혼란의 시대에 살고 있다. 그 혼란을 이겨낼 역사적 힘과 지혜를 만드는 에너지를 갖춘 땅이 화순이라고 믿는다.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혼란은 새로운 정의를 일으킬 기회이기도 하다. 화순 사람들이 모색하고 있듯, 답은 멀리 있지 않다. 역사를 성찰하고, 공동체를 다시 묻고, ‘사람이 하늘이다’라는 가장 단순하지만 가장 진솔한 진리를 되새기는 것에 있다. 그것이야말로 오늘 이 어지러운 세상을 헤쳐 나가는 길이 될 수 있다.

동학이 다시 온다.
총칼을 든 봉기가 아니라, 성찰하는 눈빛으로,
지배가 아닌 공존 공생을 향한 협동조합의 연대로.

그리고 그 시작은, 바로 여기 화순사람들이다. 화순이 동학정신을 부르고 있다. 화순 사람들이 동학 정신으로 거듭나고 있다. 그들의 울림이 큰 울림통을 만들어 동학 만세, 생명 만세, 화순 만세, 대한민국 만세를 외치고 있다.

노영필
교사, 교육평론가, 철학박사
현재 전남일보 ‘교육의 창’ 연재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