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숨결을 간직한 너릿재 느티나무./사진 김일호

울창한 숲으로 우거진 너릿재 옛길을 따라 걷다 정상에 이르면 웅장한 자태를 뽐내는 두 그루의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이 나무는 화순의 자연과 역사를 품고 있는 상징적인 유산이다.

너릿재는 단순한 고개가 아니라 역사의 굴곡을 품은 장소이다. 동학농민운동 당시, 농민군 포로들이 이곳에서 일본군에 의해 처형되었으며, 1946년 8.15 광복 1주년 기념식에 참가하려던 화순 탄광 노동자들이 미군정 경찰과 충돌하면서 많은 희생자가 발생한 비극의 장소였다.

또한 1950년 한국전쟁 중에는 국민보도연맹 관련자들과 광주교도소 재소자들이 너릿재에서 처형당했으며, 1980년 5.18 민주화운동 때는 계엄군이 너릿재를 통해 광주에서 화순으로 넘어가는 민간인을 무력으로 위협 봉쇄한 곳이었다.

이처럼 너릿재는 화순 사람들의 삶과 애환이 깃든 중요한 길목이었다. 따라서 화순과 광주를 연결하는 힘든 고갯길에서 위안이 필요했고 이러한 배경으로 자리 잡은 느티나무는 단순한 나무를 넘어 지친 영혼의 수호신 같은 존재로 여겨졌다.

우리나라에서 느티나무는 마을 입구나 중심에 자리 잡아 공동체의 안녕을 기원하는 역할을 해왔다. 너릿재의 느티나무 역시 오랜 세월 동안 이곳을 지나는 사람들에게 쉼터를 제공하며 자연과 인간의 공존을 상징하는 나무로 자리 잡았다.

느티나무는 빽빽하게 자라는 것을 매우 싫어하는 장수목(長樹木)으로 성장이 빠르고 내한성이 강한 나무로 우리나라 곳곳에서 쉽게 볼 수 있다. 너릿재 느티나무는 2004년 보호수로 지정되었으며, 당시 높이 20m, 가슴높이 둘레 1.2m, 수령 300년으로 추정되었다.

보호수로 지정된 후 20년이 지난 현재의 느티나무는 자연의 경이로움과 성장 속도를 실감할 수 있다. 2025년 6월 현재 높이 26m, 가슴높이 둘레 3.9m에 달하는 거대한 수목으로 성장하여 바람이 스치는 감촉과 되지빠귀가 노래하는 시원한 그늘을 제공하고 있다. 쉼터에 앉아서 보는 풍경은 멀리 동면 오성산이 보이고, 느티나무 아래로 거대한 물줄기가 협곡을 따라 흘러가는 듯한 장관이 펼쳐진다.

너릿재를 굽이굽이 넘어가던 그 시절, 먼지 자욱한 비포장도로를 덜컹거리며 달리던 금성여객 버스의 창밖으로 느티나무는 조용히 자라고 있었다. 그 나무는 단순한 풍경 일부가 아니라 화순의 오랜 역사와 문화, 그리고 이 땅의 생태적 숨결을 고스란히 품은 살아 있는 기억의 표상이다.

300년이 넘게 자란 나무의 감촉, 팔을 벌려 두 사람이 안아도 부족한 커다랗고 우뚝 솟은 나무에는 민초의 애환과 삶의 노래, 민족의 치욕과 동족상잔의 상흔, 80년 5월 붉은 아픔의 기억이 서려 있다. 광주와 화순을 잇고 보성, 순천, 고흥을 연결하는 길목에서 얼마나 많은 시련의 역사를 느티나무는 지켜보았겠는가?

이제 너릿재 느티나무는 경관 요소를 넘어, 기억과 치유의 공간으로 자리하고 있다. 자연과 인간이 함께 살아갈 공동의 땅 위에서 이 나무는 오랜 세월 화순의 고유한 특성과 함께하며 많은 사람들에게 쉼과 위안을 줄 것이다.

김일호
산림치유지도사
숲해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