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재영 지회장, “가장 아픈 역사 5·18, 결코 되풀이해선 안 돼”

인터뷰
변재영 지회장, “가장 아픈 역사 5·18, 결코 되풀이해선 안 돼”
여전히 사진처럼 선명한 기억, 그때 살아남은 것은 ‘운이 좋아서’였다
5월의 숭고한 시민정신, 동학 농민 운동과 3·1운동에서 이어진 계보
악의적 폄훼와 왜곡, 국격과 직결된다
5·18 민주유공자에서 국가유공자로 인정되길 바라는 마음
  • 입력 : 2024. 04.26(금) 18:54
  • 글 : 정채하 · 사진 : 김지유
5·18 시계탑은 얼핏 보기에 소박한 유적지다. 하지만 매일 오후 5시 18분에 울려 퍼지는 ‘임을 위한 행진곡’을 듣고 나면, 5·18민주화운동 최후 항전지인 옛 전남도청 앞에 우뚝 자리 잡은 시계탑으로부터 큰 울림을 얻게 된다. 변재영 5·18민주화운동부상자회 화순지회장을 본지 인터뷰석에 초대해 잊지 말아야 할 아픈 역사와 지금까지도 낫지 않는 외상을 듣고 전한다.<편집자 주>



▲ “이게 광주구나”… 어린 마음에도 실감했던 숭고한 시민의식


적십자병원은 참담한 풍경이었습니다. 생지옥이라는 말이 절로 떠오를 정도였어요. 그런 와중에도 헌혈하겠다고 줄 서 있는 사람들을 보니 어린 마음에도 ‘이게 광주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당시에 많은 시민이 총으로 무장했지만, 금융기관이나, 하다못해 자그마한 슈퍼 하나라도 강도를 당한 일이 없습니다. 오히려 한 명이라도 더 살리고 광주를 지키기 위해 너나 할 것 없이 일어났습니다.

다른 어느 나라, 어느 지역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숭고한 시민정신이라고 할 수 있죠. 그때 광주는 마치 독립된 하나의 국가와도 같았어요. 광주를, 국가를,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민초가 희생했던 겁니다. 저는 호남에서 태어난 것에 자부심을 느끼고, 항상 그렇게 살아가고 있어요.


▲ 사진처럼 선명한 기억, 그때 살아남은 것은 ‘운이 좋아서’였다


5월 18일 당시에 광주에 있었습니다. 차량 시위 때 선두 차량에 탑승했어요. 버스 안으로 최루탄을 어마어마하게 집어넣으니, 탑승객은 뛰어내릴 수밖에 없었어요. 그렇게 차에서 뛰어내린 시민들을 곤봉으로 무자비하게 폭행했습니다. 사람이 그렇게 맞으면 아플 것 같다고 생각하시잖아요? 그런데 세 대까지 맞고 나면 그 이후부터는 소리밖에 안 들립니다. 아프지도 않고. 아마 기절 상태에 가깝다고 해야겠지요. 44년이 되도록 여전히 기억들이 선명합니다.

당시에 부상자들을 집어 던지다시피 해 은행 건물 앞에 쌓아 뒀어요. 밑에 깔려 있던 사람들은 그 무게만으로 압사했을 정도였고, 저는 비교적 위쪽에 있었어요. 정신을 차려보니 누군가 병원 앞에 저를 눕혀준 것 같았습니다. 그 병원에서 척추 바로 옆에 박힌 5cm 가량의 유리 파편을 꺼내고 봉합하는 수술을 받았어요. 원장이 저더러 운이 좋다고, 다행이라고 그러시더군요.


▲ 정의로웠음에도 죄인 취급 받았던 5월 동지들


당시에 화순에서도 시위가 굉장히 많이 있었어요. 어떻게 생각하면 화순 사람들은 국가에 위기가 닥쳤을 때 가장 먼저 들고 일어날 사람들이라 할 수 있죠. 진주성 싸움에서 전사한 최경회 의병장, 쌍산 양회일 의병장이 그랬듯 일제에 맞서 저항했던 정신이 군사독재에도 반발하며 발현했다고 해석할 수 있겠습니다.

5·18 민주유공자 중 차영철 동지가 생각이 나는데, 당시에 화순 광업소에서 근무했거든요. 학생들이 다이너마이트를 달라고 하니까, 안전하게 다루는 방법을 가르쳤다고 합니다. 그것이 화근이 되어 거의 1년을 수감생활 했으니 크게 고생했지요. 부당한 권력이 선량한 시민을 짓밟고 죄인으로 취급했던 겁니다. 다른 지역에서는 지겨운 하나의 참사처럼 들릴지 몰라도, 우리에게는 하나하나 다른 슬픔으로 가득한 역사고 지금도 그 아픔은 씻기지 않았습니다.


▲ 악의적 왜곡과 폄훼 멈춰야… 국격과 직결된다


현재 가장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것은 ‘북한군이 개입했다’는 왜곡된 정보입니다. 이것은 대한민국의 국격을 손상시키는 것이나 다름없어요. 북한군 600명이 개입했다면 그들이 밀고 들어오는 동안 우리나라 군인은 뭘 했느냐는 겁니다. 학생들을 600명 모아도 어마어마한 숫자 아닙니까. 장정들이, 군인 600명이 넘어온다는 건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 이야기예요.

또, 우리 5·18 유공자가 매월 몇백만 원씩 지원받는다, 특혜를 받고 있다는 말도 있습니다. 정신적 피해 배상을 받은 동지들이 있지만, 생활고에 시달려 가족들과도 뿔뿔이 흩어지고 무기력해진 분들이 많습니다. 트라우마로 자살하시거나 후유증으로 돌아가신 분들도 많고, 마음과 몸이 망가져 바깥으로 나오지 못하시는 분들도 적지 않습니다.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애쓰신 분들은 이렇게 스러져 가고 있어요.


▲ 가장 큰 소망은 국가유공자로의 승격


국가와 민주주의를 위해 피를 흘리고 헌신하신 분들을 위해 처우가 개선될 필요가 있어요. 5·18 유공자뿐만 아니라 6·25 전쟁, 월남 참전 등의 유공자분들도 전부 넉넉지 않습니다. 우리는 5·18 민주유공자에서 국가유공자로 인정해 달라고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습니다. 교통카드를 찍어도 5·18 민주유공자라고 나오거든요. 호남이나 광주에서는 그렇지 않지만, 서울 같은 타 지역에서는 쳐다보는 사람도 있고, 현실적으로 이용하기가 어려워요.

정치인들이 망월동에서는 무릎을 꿇고 꼭 해결하겠다며 눈물도 흘리지만, 망월동 밖으로 벗어나는 순간 거짓말처럼 무산되곤 합니다. 민주유공자들이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고 살아갈 수 있도록, 여야가 마음을 합쳐 이번 22대 국회에서만큼은 꼭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그리고 국가유공자 인정을 이루어내길 바랍니다. 이러한 대우가 돈보다도, 그 어떤 것보다도 중요한 가치니까요.
글 : 정채하 · 사진 : 김지유 hsjn2004@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