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웅석 선생, 능주신청神廳, 복원 소망한다!

인터뷰
조웅석 선생, 능주신청神廳, 복원 소망한다!
서편제 소리의 본향 ‘능주’
화순 전통예술 전승의 구심점이자 산실
일제 탄압으로 능주신청 쇠락
후학들의 배움터와 전통문화 교류장으로 복원되길
  • 입력 : 2022. 07.05(화) 07:50
  • 김지유
조웅석 능주씻김굿보존회 회장
전라도 시나위 마지막 대가로 알려진 ‘조계남’ 선생의 막내아들이자, 화순군 향토문화재 제50호로 지정된 ‘능주씻김굿’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조웅석 선생을 화순저널 인터뷰 석에 초대했다.

시대적으로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우리 고유의 전통 음악을 지켜온 창녕 조씨 일가에 대한 이야기와 능주 신청(神廳)의 역사적·문화적 가치에 대해 조웅석 선생으로부터 듣고 화순저널 독자와 화순군민들에게 전한다.<편집자 주>

▲ 능주신청(神廳), 화순 전통예술 전승의 구심점이자 산실

능주신청이 무엇인지 잘 모르고 있거나 생소해 하는 분들이 많다. 그러나 국악계에서는 유명한 곳이다. 2~3년 전 서울의 국악원로 33분이 이곳 능주까지 내려와 능주신청 터를 둘러봤다. 현재의 능주신청의 초라한 모습을 보고 모두 안타까워하셨다.

능주신청은 조선 시대 당대 예술인들의 위패를 모셨던 곳이며, 화순 전통예술이 전승됐던 곳으로 수많은 예인들이 모여들고 태어난 구심점이자 산실이었다. 원래 능주 관아의 객사 내에 있었는데 주로 예인들을 가르쳤던 교방청 역할을 맡았다.

일제강점기였던 1920년대, 누군가의 방화로 인해 능주신청이 소실된 적이 있었다. 창녕 조씨일가에서 최선을 다해 복원 작업을 마친 후 계속 신청일을 이어갔지만 쇠락해 가는 것을 피할 수는 없었다. 지금은 ‘능주 정암길 94’에 표지석 하나만 흔적으로 남아있다.

▲ 일제의 탄압으로 능주신청도 쇠락

1910년 일제강점기에 들어서면서 교방청은 사라지고 교방청의 예인들이 관아밖 신청으로 모여들어 예술활동을 이어 갔다. 당시 신청의 대방직은 조종률이었는데 일찌기 작고하였고 조종엽이 마지막 신청 대방직을 수행했다

이들은  피리, 대금, 징, 장구, 가야금, 줄타기 등 1인 다역을 하며 후학들을 양성했다. 특히 조종엽은 덧배기춤의 창시자로 세간에 잘 알려져 있다 . 당시 능주는 우리 음악에 관심이 있거나 배우고자 하는 한량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일제는 사람들이 모이는 것을 꺼렸다. 마을 사람들이 모이는 것을 통제함은 물론 금지시켰다. 그런 이유로 여러 음악인의 학습장소로 활용되던 능주신청의 기능도 서서히 약화돼 갔다.

▲ 항일의식 각별했던 조부 조종엽 선생, 일본 순사에게 상투 잡혀

능주의 마지막 신청지기이자 항일의식이 각별했던 조부 조종엽께서는 능주 장날이면 맨상투 차림에 흰색 두루마기를 입고 장을 나가셨다. 한 일본 순사가 말을 탄 채 조부에게 다가오더니 상투를 잡고 흔들기 시작했다. 조부께서 상투를 자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일본 순사에게 상투를 잡히는 모욕을 당했던 것이다.

조부는 집으로 돌아와 ‘이 나라는 망했구나’ 하면서 한참 통곡을 했다. 모든 것이 끝났다는 절망감에 신청에 모셔 둔 봉안을 싸 들고 영벽정 아래 강가로 가 불태우셨다. 봉안을 모두 태우고 집으로 돌아온 후 마당에 거적을 깔고 몇 날 며칠을 통곡하셨다고 한다. 그 당시 9살 막내아들 조계남(조웅석 선생의 부친)은 이 모습을 지켜보셨다.

▲ 전라도 시나위 마지막 대가 ‘조계남’

아버지 조계남께서는 어릴 적부터 신청에서 자라면서 여러 음악을 보고 들었던 영향으로 북, 장구 장단과 구음 등 다양한 굿소리를 익히고 악기를 잘 다뤘다. 그래서 피리, 대금, 새납 등 능주 삼현의 전승 계보자로 전라도 시나위 마지막 대가로도 알려졌다.

아버지는 몸은 왜소했지만 항상 온화한 표정으로 말이 없어 화순의 양반이라는 평을 들을 정도였다. 예의범절을 중요시하여 몸과 마음가짐이 흐트러짐이 없었고 늘 강직하셨다.

아버지는 무속인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를 모범적으로 손수 실천함으로써 단골가의 품격과 절제된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셨다. 자신의 직업을 천직으로 여기며 숙명처럼 받아들이셨는데 무속인들뿐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감동을 주셨다고 들었다.

아버지는 어린 시절, 신청의 예인들과 기생들의 보살핌을 받으며 자라셨는데, 능주를 한 번도 떠난 적이 없으셨다. 아버지는 임종 때 ‘어렸을 적 신청 생활을 잊지 못하겠다’는 유언을 남기고 돌아가셨다.

▲ 아버지의 뜻 어기고 미술 전공 후 평범한 회사원 돼

어릴 때부터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자연스럽게 장구와 사설을 배웠다. 그러나 가업(家業)을 이을 생각은 전혀 없었다. 당골네 자식이라고 놀림 받았던 게 싫었다.

대학 진학을 앞두고 아버지께서는 전남대 국악과에 입학하길 원하셨다. 그러나 나는 서울로 가서 서양음악을 전공해 대학가요제에 나가고 싶었다. 아버지의 바람을 어기고 서울에 있는 대학에 들어갔다. 그러나 대학가요제에 나가기 위해선 동아리에 들어가야 했는데 돈이 많이 들었기 때문에 포기하고 미술로 전공을 바꾸었다. 대학 졸업 후에는 회사에 취직해 평범한 회사원으로 일하며 회사 사보를 만드는 일을 했다.

▲ 41세, 가업을 잇겠다 결심하고 낙향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아버지의 말씀이 항상 귓전에 맴돌았다. 그러다가 어느 날 불현듯 부모님께서 행하시던 무업의 소중함을 깨닫게 됐다. 서울에서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자 곧바로 고향 능주로 낙향했다. 그때 나이가 41세였다. 낙향 후 부친의 굿소리와 피리 가락을 그냥 묻히기엔 안타깝다는 생각에 대금을 잡기 시작했다. 어머니에게 사설을 다시 배우며 가업을 잇게 되었다.

현재는 굿소리, 장구, 대금, 피리, 아쟁, 새납 등 무속음악의 전반을 다루고 있으며, 제자들에게 씻김굿 소리를 가르치고 있다.

아버지께서 세상을 떠나시면서 젓대를 나에게 건네주시며 ‘이 젓대에는 신선의 세계가 있으니 마음이 적적할 때 불면 마음이 차분해질 것이다.’고 하셨던 말씀이 아직도 귓가에 맴돌며 잊혀지지 않는다.

▲ 집안 대대로 신청대방 맡아

우리 집안의 가승을 보면 9대조께서 병마사를 지내셨다. 그러나 당파 싸움 등으로 세상이 어지러워지자 8대조께서 한양에서 먼 이곳 능주 가옥제로 숨어들었다. 이후 가옥제에서 가정을 이루게 되면서 자손이 번성하게 됐다. 창녕 조씨 일가는 대대로 신청대방을 맡으며 많은 악공을 거느리며 무속 일도 하고 예인들에게 검무와 승무를 가르쳤다.

▲ 능주 가옥제, 수많은 국악인의 산실

능주 출신 국악인들은 수없이 많다. 원로들만 따져도 180명이 넘는데 임승근(임방울), 대금 명인 한주환 선생을 비롯해 김채만, 공창식, 조몽실, 김동진 등 많은 분이 계신다. 특히 인간문화재 공옥진 여사도 이곳 가옥제 출신이다. 공옥진 여사는 내게 사촌 형수님이 되시는 분으로 바로 이런 분들이 능주신청 대방이었던 조부께 사사하셨다.

▲ 굿소리가 판소리 판소리가 굿소리

보통 무속이라고 하면 신내림을 받아서 하는 줄 알지만, 세습을 받아 무업을 하는 경우도 있다. 굿소리가 판소리가 되고 판소리가 굿소리가 된다. 그야말로 소리로 산 자와 죽은 자 모두를 달래는 것이다. 조상현 선생의 사철가를 봐도 굿소리 요소가 많이 들어가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 ‘서편제’ 소리의 본향 능주

신청은 조선 시대의 군현 단위에 설치되었으며 전국적으로 체계적인 조직을 갖추고 있었다. 판소리, 산조, 농악 등 전통 예술 전승의 중심 역할을 하던 기관으로 지금의 국악원과 비슷한 기능을 담당했다.

능주신청에서 오랜 기간 이런 역할을 담당하며 노래, 춤, 기악이 성대한 꽃 피울 수 있게 했다. 능주가 ‘서편제’ 소리의 본향으로 일컬어지게 된 것도 이런 배경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본다.

▲ 신청복원, 문화예술인 교류의 장으로 복원되길

원래 신청의 본래 자리인 ‘잠정리 228번지’는 이미 건강원이 들어섰기에 복원이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옆에 있는 가까운 공터에라도 신청이 복원됐으면 한다. 사라져가는 화순의 전통국악문화예술의 대를 잇는 후학을 길러내는 배움터와 문화예술인들이 교류할 수 있는 장으로 능주신청이 다시 태어나길 간절히 바란다.

조웅석(아호 : 산이)
능주초등학교 63회 졸업
상지대학교 공예학과 졸업
추계예술대학교 대학원 졸업
전 광주국악협회 이사
호남무악연구소장
제50호 향토문화유산 지정
능주씻김굿보존회 회장
작사, 작곡가로 활동 중
‘오늘 같은 날’, ‘따오기’ 등 음반 출시
koreasrt1@hanmail.net
김지유 hsjn2004@naver.com